봄노래 9 小滿

 

“이렇게 좋은 날에...”로 시작하다가 말을 맺지 못하는 이들에게 그럴 것 없다는 얘기.

하고 싶은 것 하지 못해도, 있어야 할 것 없어도

좋은 날은 좋은 날

다른 이들에게 그렇듯이 내게도 좋은 날.

 

 

꽃처럼 곱고 둘러봐도 널린 게 꽃이던 때라서 꽃다운 시절이라 했겠네.

하롱하롱 사분사분 진지함이 함량미달인 사랑놀이도 흉이 되지 않았을 걸?

“그때 좋았지...”로 조각보 펼쳐들고 벌쓰지 말고

분홍빛 사라진 숲으로 가는 길을 터놓으시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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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꽃이 지고 나면

  비로소 잎사귀가 보인다

  잎 가장자리 모양도

  잎맥의 모양도

  꽃보다 아름다운

  시가 되어 살아온다

 

  둥글게 길쭉하게

  뾰족하게 넓적하게

 

  내가 사귄 사람들의

  서로 다른 얼굴이

  나무 위에서 웃고 있다

 

  마주나기잎 어긋나기잎

  돌려나기잎 무리지어나기잎

 

  내가 사랑한 사람들의

  서로 다른 운명이

  삶의 나무 위에 무성하다

 

   -이해인, '잎사귀 명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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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이 지는 아침은 울고 싶어라” 그럴 게 아니지?

 

꽃 진 자리가 꽃자리

다닥다닥 달려 있는 씨방들

새끼손톱만한 것들이 아기 머리통만큼 자라도록 견뎌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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小滿! 그 참 좋은 말, 그만큼 좋은 때.

입하와 망종 사이, 음력 4월의 중기로 양력으로는 5월 하순경, 올해는 21일이다.

왜 작을小 찰滿을 썼는가 하면 ‘만물이 점차로 생장하여 가득 찬다’는 뜻인데

아직 넘칠 때는 아니라서 그런 것 같다.

 

“시작은 미미하나 끝은 창대하리라”는 말, 욕심쟁이들이 뭘 모르고 걸어놓기에 좀 그런데

그래 뭐 어떻게 해석하든지 신경 끄고 나는 나대로...

차지 않았지만 넉넉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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軟豆(springgreen).

이를 두고 나희덕 시인은 그랬다.

 

  이만하면 세상을 채울 만하다 싶은

  꼭 그런 때가 초록에게는 있다

 

  조금 빈 것도 같게

  조금 넘을 것도 같게

 

 

조금 빈 것도 같게, 조금 넘을 것도 같게! 그게 좋은 거네.

헐벗음 지나갔지만 무성(茂盛)에 이르지 않은

찰 영(盈) 기울 측(仄)의 주기에 따르면 상현과 만월 사이, 음력 열하루께 쯤으로 잡을지.

 

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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