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마 5 천성산 기슭에서
임도 보고 뽕도 따면 좋겠네, 어느 쪽이 일차 목표였는지 가릴 것 없겠다.
가장 비 많이 쏟아지는 날을 골라서 산에 오르자고 했던 것은 아니고
일이 있어 가는 김에 “혹 여건이 허락되면...” 하면서도 숨길 수 없었던 기대는
싹을 틔우지도 못했다.
무슨 비가...
나중 들은 바로는 인근에서 토사가 인가를 덮쳐 인명 피해가 있었다고.
지붕을 때리는 작달비 소리에 밀려 집 앞 개천에서 나는 급류 소리는 들리지도 않는다.
비바람 피하자고 집 짓는 것이고
폭풍우 몰아치는 밤 집에 있으면 좋지만
두들기는 집요함에도 뚫리지 않는 천장과 벽의 완강함이 미워진다.
{소나기 되어 지붕 두들겨보다가 바람 되어 창문 두들겨보다가
“집 참 잘 지었구나!”라는 한숨 남기고 떠나간 경험 있어?}
역지사지(易地思之)라는 말, “내가 문밖에 있다고 여기고...”로 받을 수 있겠지?
♪숲속 작은집 창가에... 작은 토끼야 들어와 편히 쉬어라♪
전면 유리 미닫이를 열어젖히자 빗발이 들이치고 삽시간에 마룻바닥에 흥건하다.
{별채 내준 주인에게 미안하지만... 아 시원하다.}
축축 눅눅한 바닥에서 뒹굴면서
“마루를 구르며 노는 어린 것 세상을 모르고노나.” 흥얼거리다가
어리다고, 세상을 모른다고 하기에는 염치없이 보내버린 세월이 길어 머쓱해졌다.
왜 냄새는 풍기지만 발화되지 않으며 황만 떨어져나가던 비 오는 날의 성냥 있었잖니
진전 없는 사랑이 딱 그렇겠다 싶어서 실망 중에도 실없는 웃음 한번 흘리고,
산재했던 인연들의 교집합을 추리다가 이리저리 엮으니 별자리가 되는구나,
샛별이 눈에 띄는 건 가까이 있어서이고, 또 다른 별들 사라진 뒤에도 남았기 때문,
그런 생각들로 푸슬푸슬 선웃음 흩어졌다.
그런데 이 비린내는 뭐지?
잠자리표 코린트연필 깎을 때 나던, 구강노트 크림색 종이에서 나던, 그런 건 아닌데...
지네 들어오지 말라고 둘레에 뿌린 약 냄새?
도롱뇽 대표가 왕년의 지킴이에게 인사 왔는가?
미꾸라지들이 마당에 떨어졌는가?
{그 미꾸라지 얘기 말이지,
“네 눈으로 똑똑히 봤어? 몇 마리나? 살아서 꿈틀거리데?” 머리 흔들며 취조할 게 아니고
“거 참 신기하네잉~” 맞장구쳐주라, 믿어서 손해 볼 일 있냐?}
아하, 이거였구나!
날 밝고 뜰에 나가보니 더덕이 지천인 거라.
산에도 오르지 못하고
Dancing in the rain, 그렇게 맺힘을 풀고 싶었으나 아서라, 참자.
참깻잎 뒤척이며 깻망아지를 찾거나 토마토 순을 따기도 하다가
내준 찐 감자 먹고 돌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