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마 6 산수국
왜 ‘궁합이 잘 맞는’, 그런 표현 있지
어울릴 것 같지 않은데 win-win의 상승작용으로 보태주는 짝들.
장마와 숲? 그게 제 격이더라고.
연둣빛 새잎 돋다가 하얀 꽃들 다투어 피어내는 오월 지나 들꽃세상으로 펼쳐질 유월에
일찍 다가온 장마가 숲에서 진초록 이외의 빛들은 말살시키잖니?
그리고 “좋아해?”라는 Remy de Gourmont의 시 말이지 {그 펜클럽 회장의 번안 말고}
{Simone, allons au bois: les feuilles sont tombees;
Elles recouvrent la mousse, les pierres et les sentiers.
Simone, aimes-tu le bruit des pas sur les feuilles mortes?}
낙엽 구르는 길보다 질척한 땅 밟기가 좀 그렇겠지.
하지만 우기 없는 숲을 생각할 수 있냐고?
봄꽃도, 가을의 낙엽도, 그 기분 나쁘지 않은 음습함도 장마 때문에 가능하다고.
아, 장마는 그 자체로 참 좋은 거야.
잠시 멈춤도 없이 줄곧 내리면 노아의 대홍수처럼 되게!
{그 정도까지 안 가더라도 에고, 저 ‘4대강’ 어쩌지?}
반짝 얼굴 내미는 해가 고마워 “폭풍우 지난 후 너 더욱 찬란해” 노래할 여유도 생기고
마음이 한 발 더 내딛으면 “O sole mio sta 'nfronte a te”까지도.
좀 있다가 명개를 씻어낸다는 핑계로 개부심 한 차례 쏟아지기 전에 물안개 피어오르면
뻔뻔한 George Burns가 “Lord, I wish I was eighteen again”이라고 내뱉듯이
청혼가를 불러봐?
♪이른 아침에 잠에서 깨어 너를 바라볼 수 있다면♪
그러고 또 비오고 또 비 맞으며 걸을 것이다.
그 숲에 산수국 그냥 있더라.
기다렸다는 듯이 꽃 달고 있네. {딱 그 자리에 꼭 그 나무일까? 의심스럽다는 갸우뚱 사절!}
산수국이 예쁘다고 끌리는 건 둘레에 달린 헛꽃의 손짓 때문이다.
개꽃의 상대어가 참꽃이라면 헛꽃은 본꽃이 아니라서 나온 말일 것이다.
무엇이 本~, 眞~, 實~이고, 허면 아니거나 모자라서 가짜, 짝퉁, 모조, 유사, 허위이겠냐고?
꽃은 생식기관이다.
암술과 수술이 한 꽃에 있기도 하고, 한 몸도 아닌 다른 몸으로 나눠있기도 하고,
꽃잎이 따로 없는-비천한 것들, 가리지도 않고!- 민덮개꽃(無被花)도 있고,
암수술이 퇴화한 무성화(無性花)도 있다.
그러면 해바라기나 수국의 둘레에 붙은 혀꼴의 비키니 조각 같은 건 뭐 하는 건데?
벌 나비를 끌어들이는 일을 하니까 폼으로 달려 놀고먹는 건 아니네?
유인책-‘삐끼’ 같은 말 쓰지 마-, 흠, 생산직과 구별되는 영업직이라면 되겠다.
예쁜 헛꽃-헛? ‘헛~’ 아닌데!-은 벌레를 끌어들여 꽃가루받이(受粉)에 성공하면
“임무완수!”를 외치고 돌아눕는다. {이제 예쁘게 보일 이유도 없고 해서.}
제 의지라기보다는 씨 맺음에 에너지를 집중하기 위하여 용도폐기당한 셈.
그렇다고 “토끼사냥 끝났다고 개를 삶아 먹겠다(兎死拘烹)? 버럭~” 그러지 않는다.
옆에 있는 개다래나무 잎이 더러 탈색한 것은 원인 모를 백반증(白斑症)에 걸려서가 아니고
꽃이 눈에 띄지도 않게 볼품없어서 별난 잎을 보고 뭔가 해서 와본 벌 나비들이
“시원찮지만 온 김에...”로 들리게 하려는 뜻.
색 빼는 것도 힘든 일이니까 앞이나 그렇게 꾸미지 뒤는 그냥 푸른 잎이다.
숲에는 나무, 꽃, 새들만 아니고 몸 낮추고 들여다보면
곱지만 않은 것들, 그래도 존재이유를 지니고 어울려 열심히 사는 것들이 눈에 들어온다.
살아있으니 좋은 것들이라 하자.
그 좋은 것들은 다 오래 된 공동묘지에서 산다.
산 것들에게 자리를 물려주고 먹이가 되는 것들도 다 좋다.
{Whatever is is good.}
{한가하고 호기심 많은 분은 그림 속 나비가 몇 마리인지 세보시든지.}
급작스레 모인 빗방울들이 물줄을 이루고 기세 좋게 흘러내림을 보며
“저 물도 내 안 같아야 울어 밤길 예놋다” 할 것 없네.
“그리운 임!” 하고나서 이을 말이 없다고 울 것까지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