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고
‘너무’라는 말로 熱氣와 强度를 표현하다보면 달리 할 말도 없어 ‘너무’만 반복하게 된다.
보고 싶다. 너무 보고 싶다. 너무 너무 보고 싶다.
가을길 혼자 걷는 것도 아닌데 “그립다 말을 할까 하니 그리워”의 정서로 빠지겠는가, 그냥
덥다. 너무 덥다. 너무 너무 덥다.
{호들갑떠는 계집애 아니라면 보통 ‘너무 너무’로 끝나지 세 번 이상 반복하지는 않을 터이다.}
강제한 것도 아니고 돈 주겠다는 제의도 없었는데 꼭 이렇게 더운 날 산에 가야 하는 것이냐?
농촌에서는 김매던 노인들이 열사병으로 돌아가시기도 했다대.
{장마 중 무성한 잡초들 아직 땅 젖었을 때에 뽑고 싶으셨을 거라.}
쓰기도 귀찮고 당국의 당부를 뉴스에서 복사해 옮긴다.
「보건당국은 폭염 기간 중 낮 시간에 야외활동을 자제하고 충분한 휴식을 취하는 한편 수분을 섭취하라고 당부했다.
폭염피해가 의심되는 경우 즉시 의료기관에 내원하라고 강조했다.」
그 아저씨 말이지 아침에는 연구해야한다고 그래서, 오후 3시가 지나서 산행 시작.
난 관악산 가기 싫거든, 그것도 서울대학교 쪽에서 오르는.
만날 거기 그냥 있으니까 동네 뒷산쯤으로 여기고 “632m? 애개~” 그러지만
冠岳山은 巖山이고 惡山이어서 막상 오르자면 X고생이라고.
이십년 동안 가까이 두었던 곳을 떠나기 전에 친구를 불러 같이 가자는 마음 모르지 않는다만...
개고 첫날, 계곡에 물이 찼을 때 가야 좋다고 해서.
참 좋은 친구들
복장불량에다가 신발까지 벗기에 “아니, 미끄럽기도 하고 찔릴 텐데 신은 신지 그러나?” 하자
다른 친구가 “내삐도.” 그런다. “관악산 다람쥔데.”
-모자는 왜 안 써? 나 하나 더 있거든.
-괜찮아. 필요 없어.
그러고는 사막의 수도자들 얘기를 꺼낸다.
작열하는 태양에 욕망이 제압당하여 더욱 정신적이 된다는 진부한 얘기.
잘해봐.
난 그늘이 좋다. {독버섯 아닌데도.}
그는 나중에 “내가 오늘 머리가 좀 이상하다. 늦게들 올라오는 바람에 많이 기다렸거든.” 그랬다.
{그가 그냥 뛰어 내려간다는 그 바위 나는 벌벌 기어 올라가노라 시간 좀 걸렸지.}
나 왜 그러지, 자꾸 숨이 차서 자주 쉬는 바람에 올라가는데 시간이 많이 걸려서
내려오다가 맑은 물에서 ‘高士濯足圖’ 그림 하나 만들지 못했다.
발 씻는 것보다는 흐르는 물 물끄러미 쳐다보는 게 시간이 더 걸릴 것이다.
高士 아니니까 觀水로 뭘 깨우칠 것도 아니어서 한마디 하네만
그게 뭐 시간 끌며 窮究한다고 될 일도 아니고
부싯돌 치다가 펄럭하고 불 일듯 깨달음은 올 거라.
아직 등잔 켤 때가 아니라서 그냥 간다니까.
타박타박 걷다가 앉고 싶지만 어둡기 전에 숲을 빠져나가야 하니까...
관성이 약화되면 저절로 서버릴 것이다.
그러니 길기만 했던 교제가 시들해지고 있기는 있었던가 싶게 잊히기도 할 것이다.
반면에 燃費가 높아 소모를 감당할 수 없는 연애도 오래 못 가겠네.
그저 ‘첫 키스의 날카로운 기억’과 더불어 피난 갈 때 빠트리지 않을 상자에 넣을 보석 몇 개
챙기면 되겠다.
돌아와 바지를 벗다 보니 무릎에 구멍이 났다.
까진 데가 비로소 쓰리다.
흉터 생길 만큼은 아니어도 그 바지 그냥 입는 동안은 생각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