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로 -불영사에서-
Natura naturata는 natura naturans이기도 해서
누가 만든 것도 아니고 스스로 있고 저절로 되어가는
하하, “절로!”일세, 그 말고 뭐라 하겠나
산 절로 물 절로이구나.
{뾰족 바위 없지 않지만 대체로 둥글던 걸}
큰 산도 둥글둥글
{그러니 초옥도 둥글, 산소도 둥글}
구름은 뭉게뭉게
물길은 굽이굽이
산길은 구불구불
“오고 나니 기험타 아하 물도 많고 산첩첩이라 아하하” 삼수갑산 같진 않아도
나름 험하다는 울진에서 봉화 가는 길 그만하면 잘 빠진 S-line을 따라가면서
“꼬불꼬불 첫째 고개 첫사랑을 못 잊어서 울고불고 넘던 고개”를 부르다 보면
열두 고개 다 넘지 않아 불영사 입구에 이른다.
청산도 절로절로 녹수도 절로절로
산 절로, 물 절로, 산수 간에 나도 절로
이중에 절로 자란 몸이 늙기도 절로 하리라
김인후(河西 金麟厚))가 떠오른 것은 물소리, 바람소리, 음이온, 피톤치드, 산소 등으로
흥이 절로 일어서인지.
하서는 인종이 등극하고 얼마 되지 않아 붕어하자 패악한 정치판에 몸담을 이유가 없다고 낙향하고 말았다.
{그렇게 떠났기에 을사사화의 살육을 모면할 수 있었지만.}
‘절로’(自然)로 노닐던 그는 시와 술을 즐겼다고 한다.
하지만 의분을 달래고 세상을 잊으려는 가운데서도 예의와 법도에서 벗어나지 않았다고.
그와 사돈이었다던가 {확실치 않네}, 아무튼 뒷간처럼 멀면 좋은 사이가 아니고
한번 만나면 달을 넘기며 경학을 토론하고 노래를 즐기며 술을 나누었다는 양산보(梁山甫),
그가 지은 소쇄원(瀟灑園)에 김인후가 들르면 연못의 물고기가 알아볼 정도였다고 한다.
양산보는 그의 스승 조광조가 기묘사화로 유배되었다가 죽임(賜死)을 당하자 출세의 뜻을 버리고 자연으로 숨어들었다.
그런 뜻으로 건립한 소쇄원에 모여든 이들이 김인후, 송순, 정철, 기대승, 임억령, 고경명 등이다.
어려서부터 천재로 꼽혔고 열여섯에 고시{賢良科}에 패스한 그가 出仕를 마다한 것은 그렇다 치고
어쩌자고 이렇다 할 글 한 줄 남기지 않았을까?
세상이 그를 버린 게 아니고 그가 세상을 버린 것인지.
아깝다... 할 것 없네. 그는 누릴 호사 다 누렸네.
소쇄원에 드나든 이들이 “우린 벼슬길에 뜻이 없거든요.”라는 처신으로 살아남았고
그들은 글과 노래를 남기고 가사문학을 일으켰고 호남 儒林을 지켰다.
“책을 쓰시지 그러세요?”라는 얘기 간혹 듣거든.
왜 사냐 건 피식 웃듯 할 말 없어 객쩍은 웃음 흘리지만
{게을러서 그러지 못할 줄 알면서 묻기는...}
땅뙈기 집 한 칸 없어도 이리 다니며 光風과 霽月을 즐기면 됐지 뭘?
{아무나 다 한다고 나까지 그럴 건 없고.}
예약하지 않아 소광리 금강송 숲을 들어가지 못하고
입산금지, 계곡 출입금지로 둘러친 불영사 경내만 들렀다 오기로는 발품 판 게 아깝다.
불영사. 신라 진덕여왕 때(651년) 義湘이 창건한 절.
서역의 천축산을 닮은 곳에 가보니 毒龍이 살고 있는 큰 폭포가 있는데
독룡을 쫓아내고 龍池를 메워 절을 지었다고 한다.
부처님의 그림자가 비치기에 佛影寺라 했다는데
응, 어디지? (둘레둘레) 그러다보니 야트막한 산 능선에 부처바위 하나 솟았고
法影樓 앞 佛影池에 어른거리는 그림자가 있구나!
시월 보름쯤 잎 다 떨어진 초겨울 달밤에 다시 와보면 좋겠네.
왜개연꽃으로 덮을 게 뭐람?
시원찮고 기준 미달, 작은 것들, 일본풍에 붙이는 왜, 개- 둘이나 붙어있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