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이
14시간 時差
등 돌리고도 두 자나 떨어져서
하나는 깨어 있고 하나는 자고
여행 중에 안부 전합니다.
{불특정다수에게 보내는 유세용 인사 같네? 친애하는 애국시민 여러분...}
아직도 화씨 114도-관심 있는 분은 섭씨로 계산해보셔요-
무심코 안전띠 버클을 잡아당기다가 “앗 뜨거워~”
오래간만에 들리니 여전히 뜨거운 곳이지만
그래도 여기서 십삼 년을 살았고, 아직도 permanent address로 되어있는 곳이거든요.
살 만한 데니까 대도시가 형성되었겠지요.
꽃빛이라고는 배롱나무와 유도화만 남았고 풀잎조차 새파랗지 않고 마른 밀대 빛깔이네.
“만물의 피곤함을 사람이 말로 다할 수 없나니”(Eccl. 1:8)
“피조물이 다 이제까지 함께 탄식하며 함께 고통을 겪고 있는 것을...”(Rom 8:22)
그런 구절들이 생각나고
“햇살이 불처럼 뜨거워/ 불볕에 눈이 흐리어”라던 윤곤강 시인의 ‘해바라기’가 떠오릅니다.
머무는 곳에서 개 한 마리를 임시로 맡았는데
늙어서 괴상한 짓도 하고 사람들이 외출할 때는 저를 내버리고 떠나는 줄 알고 서글피 울더라고요.
“Old dog Tray's ever faithful,
Grief cannot drive him away,
He's gentle, he is kind;
I'll never, never find A better friend than old dog Tray.”
그러고는 20년을 살았던 나라로 갔지요.
공항에서 차를 빌렸는데, 예약했던 중형차가 없다고 대형 컨버터블을 내줍디다.
덮개를 열 줄도 모르고 노랑머리와 썬글래스가 어울리는 여자를 태울 것도 아닌데
큰 차 몰아봤자 기름 값만 더 들고... 쩝.
그러고 그만 긁어버려서... 내 참... 보험도 안 들었는데 얼마를 물어야 할지... 에고.
어쩌다가 Sunnybrook Park를 가보게 되었어요.
70년대 초기 이민자들의 집합장소였는데
바비큐 파티 하는 자리 어디를 기웃거려도 처녀총각이라면 대환영이던 시절이었지요.
남들 잘 찾지 않는 길에 소나무 한 그루, 그 밑에 벤치가 하나 있었지.
그때는 “내 님은 누구일까 어디에 계실까”를 그려보는 곳이었어요.
지금은 오지 않는 당신을 기다리는 자리?
“고도를 기다리며”는 이미 실연한 다음일 텐데
失戀했어도 失緣은 아니니까 기다릴 수밖에요.
‘당신’의 구체성이 ‘그분’의 추상성과 모호함으로 치환되었는가?
물론 그립기야 하지만
없어도 견딜 것 같은
아니라도 괜찮을 것 같은.
아 이 좋은 천지에 찾아오는 이가 없네?
헤어지는 슬픔을 노래할 이유는 없지만
피어오르고 사라지는 구름을 바라보니
張思老(融)의 ‘別詩’구절이 떠오르네요.
白雲山上盡
淸風松下歇
慾識離人悲
孤臺見明月
집 비운지 오래라 찾아오시는 분들에게 좀 미안하기도 해서
안부 전하는 뜻으로 몇 자 남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