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날 (Herbsttag)
{“철수가 나오면 영희도 나오겠네? 석희는 어때요?”
그 참을 수 없는 XX이의 가벼움이 그 나라의 현주소이다.
“다 나오면 소는 누가 키우고?” 그렇겠네.}
아무나 시를 짓는 나라, 동서고금 명시 한 구절쯤 밥알 흘리듯 내뱉는 철수와 영희
하니까 “Sous le pont Mirabeau coule la Seine/ Et nos amours.”도
“Herr, es ist Zeit. Der Sommer war sehr groß.”도 술술?
릴케의 ‘가을날’, “주여, 때가 왔습니다. 여름은 참으로 위대했습니다.”로 옮겼다고 잘못될 건 아닌데
그냥 좀 평면적이어 시시하다는 미흡한 느낌.
“지난여름 너무 했잖아요? 때 되었으니 가긴 가겠지요.”라는 뜻일 것이다.
‘이제 그만’과 ‘아직 좀 더’의 경계 같은, 해서
“왔으니 가야 하는 것 아닌가요?” 그런 재촉인가 하면
“그래도 좀”하는 붙듦인가 하면
“결국 그렇게 되고 말겠지만”이라는 체념이기도 한.
가을날은 그렇다.
시인이라고 별난 언어로 알지 못하는 얘기를 하는 게 아니고
시의 공감은 나도 겪어봤고 그래서 아는 경험과 상식의 공유 때문에 가능하다.
“그대를 지나서 비로소/ 그대를 생각하듯이” (강은교, ‘벽 속의 편지 -눈을 밟으며’)
그거 다 아는 얘기, 그래서 새나오는 가벼운 한숨.
장미가 지고서야 그 아름다움을 알겠네? 같은 얘기.
힘들었던 여름, 지나고 보니 좋은 시절이었다고?
붙들 걸 그랬나? 말렸으면 떠나지 않았을지도?
그게 삼진 아웃된 타자가 멋쩍은 웃음 지으며 덕아웃으로 들어가면서
방망이 끝을 흔들거리는 뜻, “이렇게 해봤더라면...”
후회는 추해서가 아니고 그럴 이유가 없어서 하지 않는 게 좋다.
계절은 내가 초청해서 오고 붙잡아서 머물고 그만 가라고 해서 떠나지는 않으니까.
‘September Song’이 듣고 싶어서 검색창을 열었다가
그런 포스트 제목이 있어서 열어보니 조선블로그에 내가 올렸던 글
두 번이나. {2006. 9. 19, 2009. 9. 22.}
지우기도 그렇고 1, 2로 고치고는 3은 그만 두기로.
9월은 가을.
가을 다음엔? 깊은 가을.
겨울은 없다. 생각할 수 없고 느낄 수 없으니까.
9월은 하루로 치자면 황혼.
저물녘이라고 아주 캄캄하지는 않은
“어머니, 아직 촛불을 켜지 말으셔요”(신석정)쯤 일 것 같네.
낮엔 일했고 이제 놀이할 시간.
“Bonne nuit, mon amour!” 그러기 전에 ‘soirée’의 기대로 가슴 벅찬 때.
September Song (Ella Fitzgeral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