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편지 1
무르익기를 기다리는 가을이
흑룡강 기슭까지 굽이치는 날
무르익을 수 없는 내 사랑 허망하여
그대에게 가는 길 끊어버렸습니다
그러나 마음속에 길이 있어
마음의 길은 끊지 못했습니다
-고정희, ‘가을편지’ (부분)-
정희가 생각나면 “에휴~” 한다.
오래 되었으나 “에휴~” 한다.
{오래 되었기에 “에휴~” 하는 거겠지?}
우와기라는 나쁜(?) 말 쓰지 않으려면 상의? 윗도리?
그래도 입거나 벗을 때 돕는 손이 없으면 “아구구~” 소리를 내는 사람이 걸치는 건 우와기.
걸쳐줘야 메는 배낭 지고 집을 나섰다.
종삼에서 갈아타자면 한참 걷게 된다.
내릴 데 잘 걸리자면 탈 데를 잘 골라야 하는데 번번이 잘 안 되더라고.
“다시는...” 하고서는 또 걸리더라고.
북한산 둘레길 걷는다고 들어선 것이 망월사로 가는 길이었다.
{“둘레길이 이렇게 험해서야...” 뭘 모르고 투덜거리며 올랐다가 내려오면서 알게 됐다.}
슬로건의 나라에서는 화장실에 “남자가 흘리지 말아야 할 것은 눈물만이 아니다” 같은 걸 붙여놓는다.
{O군, 알았지?}
국립공원을 쓰레기로 훼손하지 맙시다! 그럼 그래야지.
근데... 어딨어?
추억은 뭐고 쓰레기는 뭔고?
오래 전 일은 화석으로 자연에 동화했을 것이다. 그렇게 꽤 됐을 것이다.
가슴 속에 품을 것도 없고.
내출혈은 멈췄다 치고 딱쟁이 떨어지지는 않은... 그쯤이면 쓰레기?
버리려 했다가 다시 가지고 내려오는 것.
쓰레기는 껍질, 먹고 남거나 먹지 못하는 것, 빈 용기 같은 것들일 것이다.
용도 폐기, 재생 불가능, 그러면서도 파기가 쉽지 않은 것.
한겨울 빈 벌판에 날리는 폐비닐 같은 것.
쓰레기 없는 즐거움?
그렇지 않더라. 즐거움이 큰 만큼 쓰레기는 늘어나대.
망월사에 들어가면 망월사가 없어진다.
사진 하나 담으려 해도 각이 없네?
사찰이야 수행자의 도량이어 마땅하고
할 일 없는 조기은퇴자들의 어슬렁거리는 발길이 반가울 리 없지만
그래도 들렀으니 쉬어가라는 인사가 없다.
뜰이 없다.
나무 밑이 없다.
달려있는 것은 떨어진다.
가을은 떨어지는(凋落) 계절.
사과가 떨어짐을 보고 만유인력의 법칙을?
그럼 “떨어진 것들은 모두 달려 있었다”는 무슨 법칙?
서있는 것들은 모두 쓰러진다?
생각해보니 그런데, 그런 건 ‘명언 백선’ 같은 데 뽑히지 않았더라고.
등이 휠 것 같은 삶의 무게여 가거라?
짐 벗었어도 쓰러지던 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