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편지 7 김남주 생가

 

땅은 흙이니까

농부는 흙에서 씨뿌리고 가꾸어 곡식과 채소를 거둘 것이고

땅에 농부만 사는 것은 아니어서 시인 같은 이들조차 뭔가 흙에서 얻을 것이고

“흙에서 자란 내 마음”{정지용, ‘향수’}은 흙 같은 시를 토해낼 것이다.

 

사람 사는 데는 시인이 있기 마련이라는 얘기가 이상하게 시작된 셈인데

특정 동네에서 특산품 내듯, 네잎 클로버가 찾기도 싱거울 만큼 흔해빠진 풀밭 따로 있듯

인정받을 만한 시인들을 양산한 특화 지역도 있더라고.

해남이 그렇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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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남 배추가 최고라는데... 생가 앞에 배추밭, 마늘밭이 있다.

 

 

김남주(1946-1994)와 고정희(1948-1991)는 같은 삼산면 출신,

봉학리와 송정리가 이웃동네이고 두 시인들의 아버지들은 동갑내기로 친구였다고 한다.

해남의 다른 시인들? 알만한 이름들 대충 꼽아보니

이동주, 박성룡, 윤금초, 노향린, 윤재걸, 김준태, 황지우, 김여옥... {이상 출생년도 순}

 

김남주 얘기하려다가 ‘삼천포’로? “걘 또 누군데?” 핀잔 듣겠지만

낳지는 않았어도 미황사 아랫마을에서 마지막 몇 해를 살다 갔으니 {바로 지난달에 말이지}

해남 시인이라 해둘까, 김태정! 에휴, 에휴, 에휴...

 

  그리운 이의 한 생애가

  잠시 손등에 앉았다가 포르르

  새처럼 날아간 거라고

  땅끝 바다 시린 파도가 잠시

  가슴을 철썩이다 가버린 거라고

  스님의 목소리는 어쩐지

  발밑에 바스러지는 낙엽처럼 자꾸만

  자꾸만 서걱이는 것이었는데

 

   -김태정, ‘미황사’ (부분)-

 

{흠, 그 똘똘하고 단단한 금강스님 말씀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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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김남주를 찾아갔었지.

생가? 그건 아니고,

그러니까 김남주의 고향에 세워놓은 기념비 같은 건데

피맺힌 부르짖음을 대리석에 새겨두니 좀 거시기하더라.

“이러면 김남주 아니잖아?” 그런 느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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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못 생겨서 죄송합니다”라고 말한 사람도 있었지만

“고생을 못해봐서 죄송합니다” 그럴 만한 사람들도 적지 않을 것이다.

어렵던 시절에 고생하지 않은 사람들이 많지는 않겠지만

그들만 괜찮았던 시절에 대해서 그들은 미안함을 느끼기도 한다.

{“나도 겪을 만큼 겪었다”는 소설을 자신조차 사실로 믿는 정치인들이 없지는 않지만.}

김남주 같은 이들에 대해서도 그렇다.

“당신이 정의, 민주, 인권을 외치다가 체포, 고문, 투옥 당했을 때에 우리는 그 아픔을 함께 겪지 않았습니다.”라는

죄송함이 어찌 없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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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바뀌어-그렇다고 좋은 세상 된 건 아니지만- ‘민주(화운동) 유공자’에 대한 보상과 대우도 있게 되고

더러는 투쟁 경력을 정치 입문생의 경력 과대포장으로 이용했는데

그러고 보니 고난당한 투사들에 대한 묘한 콤플렉스는 사라지고 말더라고.

 

김남주 생가(?)를 왜 그렇게 꾸며야 하는지 모르겠네.

지자체의 생색내기-관광상품 개발-와 철지난 “민족, 자주, 민주...”를 외치는 이들의 보루 지키기?

{아주 가끔 무슨 행사 때의 놀이마당으로 필요하겠지만, 별로 관리하는 것 같지도 않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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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도화된 허위와 기만, 기득권을 위협하는 자들에게 ‘종북 좌파’ 딱지 붙이기는 현재진형형이고

김남주가 일어설 수밖에 없었던 ‘이유들’이 사라지지는 않았지만

 

  지금 이 나라에는

  보수와 진보가 있는 게 아니어요

  우익과 좌익이 있는 게 아니어요

  매국노와 애국자가 있을 뿐이어요

  그 중간은 없는 거예요 없는 거예요 어머니

 

  -‘어머님께’ (부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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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긴박한 수요였다고 하더라도 ‘~닷! ~랏! ~잣!’이라는 한시적 가치의 구호가 시는 아니잖아?

괴롭고 슬프지만 그래도 살아있음 자체가 좋기만 한 시시한 일상과

물리지도 않는 사랑의 한숨과

관계들의 교집합이 빚어내는 희소확률의 의외성과

사람들을 품어주는 환경과 바라보는 자연의 아름다움

그런 것들을 배열하기는 해도 심하게 가공하지 않은...

글쎄 딱히 시라 할 건 없어도

시인들은 있으니까

 

김남주는 전사가 아니고 시인이잖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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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옥 후 오년 남짓밖에 못살았으니

‘생명 외경’이니 하는 보편적 가치를 찾는 박노해처럼

{전향과 변신은 아니고} 보다 깊어진 눈빛을 보여줄 시간을 부여받지 못했지만

여린 마음으로 꾸미지 않고 일찍 뱉어버린 동시 같은 노래들도 기억되었으면 좋겠어.

 

“함께 가자 우리 이 길을/ 셋이라면 더욱 좋고 둘이라도 함께 가자” 그런 구호 없었다 하더라도

‘까막소’ 가기 전에도

김남주는 시인이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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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옛 마을을 지나며’

 

  찬 서리

  나무 끝을 나는 까치를 위해

  홍시 하나 남겨둘 줄 아는

  조선의 마음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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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랑은’

 

  겨울을 이기고 사랑은

  봄을 기다릴 줄 안다

  기다려 다시 사랑은

  불모의 땅을 파헤쳐

  제 뼈를 갈아 재로 뿌리고

  천년을 두고 오늘

  봄의 언덕에

  한 그루 나무를 심을 줄 안다

 

  사랑은

  가을을 끝낸 들녘에 서서

  사과 하나 둘로 쪼개

  나눠 가질 줄 안다

  너와 나와 우리가

  한 별을 우러러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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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별’

 

  밤들어 세상은

  온통 고요한데

  그리워 못 잊어 홀로 잠 못 이뤄

  불 밝혀 지새우는 것이 있다.

  사람들은 그것을 별이라 그런다.

  기약이라 소망이라 그런다.

  밤 깊어

  가장 괴로울 때면

  사람들은 저마다 별이 되어

  어머니 어머니라 부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