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내어줌과 나눔과 섬김으로 -네팔에서 3-
천국과 지옥-환경의 만족도와 쾌적 여부를 두고 하는 말이지 종교적 의미는 아님-이라는
두 도시 이야기는 사람 사는 곳 어디에나 있다.
빈국 캄보디아가 열 배는 더 잘 살 거라니 네팔의 형편이 어떻겠는가?
거기에도 물론 상대적으로 더 잘 사는 사람들도 있고
이층 벽돌집에서라도 사는 이들은 구르카 용병 출신으로 저축할 수 있었던 사람들이다.
전쟁난민은 아니나 인도에서 살 수 없어 밀려온 이들,
계급사회에서 불가촉천민으로 여겨지는 이들은 우리에서 돼지들과 같이 산다.
우리나라에는 굶주린 사람들이 없겠냐마는
그리고 그들 모두 먹고살만한 사람들의 나눔과 사랑을 필요로 하지만
동남아, 아프리카에 있는 나라들의 빈민촌에 사는 이들을 보면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이 사람 모두에게 주어진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다일복지재단에서 설립한 밥퍼 센터에서 제공하는 밥을 기다리는 줄
나는 지난 몇 해 국제구호개발단체인 ‘굿네이버스(Good Neighbors)’에서 일했다.
굿네이버스의 ‘존재 이유’는 “굶주림 없는 세상, 더불어 사는 세상을 만듦”이다.
최대 구호단체 중의 하나인 ‘월드비전’의 목표도 “어린이들을 위하여 보다 나은 세상 만들기”이다.
다른 많은 개발구호 NGO의 목적과 사명도 비슷한 것이리라.
나눔과 서로 도움과 섬김을 통해서 ‘우리들’이 사는 세계가 ‘보다 살기 좋은 세계’가 되고
무엇보다도 먼저 ‘기아’ 문제 해결을 위해서 노력한다.
모든 생명의 원초적 본능이랄까, 일차적 목표는 ‘살아남음’(to survive)이다.
그러자면 먹어야겠지.
식량은 생명이다.
“백성은 밥을 하늘로 삼는다(以食爲天)”고 하지 않았던가.
한때 팔팔했던 김지하는 담시 ‘장일담’을 통해서 이렇게 표현한 적이 있다.
밥은 하늘입니다.
하늘을 혼자 못 가지듯이
밥은 서로 나눠 먹는 것
밥은 하늘입니다.
하늘의 별을 함께 보듯이
밥은 여럿이 같이 먹는 것
밥이 입으로 들어갈 때에
하늘을 몸속에 모시는 것
밥은 하늘입니다.
아아 밥은
모두 서로 나눠 먹는 것
일찍이 사람의 몸이 되어 오신 분도 그러셨다.
“나는 하늘에서 내려온 밥이다.”
한 그릇 밥에 하늘, 땅, 사람이 들어있다는 뜻의 무위당 장일순 선생 글
살아남고 나면 잘 살고 싶고(to live well)
잘 살면 더 잘 살고 싶은(to live better) 게 생명의 바람이다.
나의 더 잘 살고 싶은 욕구와 다른 이들의 살아남아야 하는 욕구가 상충할 때는?
나에게서 조금 빼서 이웃에게 준 것이 그에게는 아주 큰 것이라면?
가난 구제는 나라(님)도 못한다는 말이 있다.
그러니 밑 빠진 독에 물 붓기 식의 가망 없는 노력을 그만 두어야 할까?
정부가 복지 확대와 사회안전망 확충을 통해서 구휼을 제도화하는 동안
민간-시민사회-은 자발적, 자율적으로 볕 안 드는 곳과 복지사각지대를 찾아
여유와 관대함을 공익성에 투자해야 더불어 잘 사는 좋은 환경이 될 것이다.
대학생들 중에는 취직준비와 스펙 쌓기뿐만 아니라 자유롭게 여행하며
필요한 곳에서 섬기는 이들도 있다.
지구촌 시대에 내 곁에 있어 눈에 띄는 이웃뿐만 아니라
훨씬 열악한 환경에서 생존 자체가 위협받는 다른 나라의 인민들에게도
사랑의 눈길과 도움의 손길을 뻗치는 것이 보다 좋은 세상 만드는 일일 것이다.
보다 좋은 세상에서만 보다 잘 살게 되지 않겠는가?
예쁜 아이들, 잘 먹고 잘 자라 좋은 세상 만드는 일꾼들 되어라.
주류를 이루는 몽골 계-한국인들과 닮은-와 눈이 깊은 아리안 계 아이들이 빠져나가면
인도에서 유입된 까만 애들이 뒤차손님으로 온다.
성숙한 국제NGO들은 이제 긴급구호와 시설 중심의 지원 사업보다는
지역사회개발사업(Community Development Project)을 중점을 둔다.
지역사회 전체가 지속적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지역 주민들이 직접 참여할 수 있는 통로를 열어주고는
조력자와 상담자가 되는 것이다.
각종 조합/자치단체가 결성되어 생산비용과 유통마진을 줄임으로 소득 증대와 고용창출을 도모하며
자생력과 성장의 내부동력을 얻게 하는 것이 개발NGO의 전략이다.
후발 NGO의 경우에 당장 눈앞에 드러난 딱한 처지를 보고 외면할 수 없어서
우선 먹이고 보자니 재원 마련을 위한 눈물 연기 호소에 매달리기도.
한국국민들이 잘 살기도 하지만 기부에 대한 국민의식이 성숙해짐으로써
국내에서의 구제뿐만 아니라 해외원조사업도 날로 커지고 있다.
이러한 경향에 편승하여 국제NGO들의 사업과 예산 규모도 고속 확장하고 있다.
{목적전도현상이 일어나지 않도록 초심을 유지하며 투명 운영해야 할 것이다.}
언청이수술, 그다지 어렵지도 비용이 많이 들지도 않는데
평생 저렇게 살아야 할 건지...
가난을 ‘윤회’와 운명에 돌리지 말고...
최근에 안철수 교수의 거액 기부를 놓고 의심과 냉소의 시선도 적지 않은 것 같다.
때가 때인 만큼 정계의 예민한 관심은 이해할 만하고
지난 대선 때 어떤 후보의 전 재산 사회 환원의 약속이 어떻게 이행되었는지 석연찮기도 하지만...
부자의 넉넉한 기부와 가난한 과부의 작은 연보는 다 필요하고 환영받을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