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편지 9 놓아주기
보지 못했지만 첫눈이 내렸다는데 {적어도 기록상으로는}
그러니까 겨울이 온 거네?
가을은 그럼? 오래 머물렀네.
언제고 가기야 하는 거지만 인사 없이 보내기가 그렇고 해서
멀어지는 뒷모습을 보며 마지막 편지를 쓴다.
{벌써 추억을 더듬어야 하는가? 급격한 fade-out을 돌려놓지 못하겠네.}
잠들었을 때는 생각의 흐름을 차단하거나 그래도 생각하고 있음을 자각하지는 않으니까
임 생각에서 쉼을 얻을 수 있겠는데
非夢似夢 간이랄까 어슴푸레함에 머물게 하는-명징한 하늘같지는 않네?- 가을은
놓아주지를 않더라고.
사랑의 완성은 고백의 충동에서 벗어나는 때이니까
먼 길 참고 걷다가 제풀에 지쳐버려도
“아니지, 그럴 게 아니지” 하며
수행을 계속했더랬지.
La donna è mobile, Qual piuma al vento...
그런가?
여자의 마음을 두고는 할 얘기가 없고
깃털인지 갈대인지 흔들린다고 해서 웬 흉?
나무가 가만히 있고자 하나 바람이...(樹欲靜而風不止) 그런 말씀도 있더만도
갈대의 까불림을 지조 없음이라 할 게 아니네.
글쎄 신경림이 그러기는 했는데
바람도 달빛도 아닌 것
갈대는 저를 흔드는 것이 제 조용한 울음인 것을
까맣게 몰랐다.
그의 온몸이 흔들림은
아마도 바람이겠지, 바람이 그랬다고 하자.
그렇게 나부끼거나 요동친다고 해도
제 자리에서 버티고 떠나지 않았으니
오히려 그의 지조와 절개를 쳐줘야 하는 거 아닌가?
“내 몸을 스쳐간 모든 사람들”-경아?-을 기억할 것도 없고
바람은 기압의 차이로 이동하다가 소멸하는 것
지속의 길이로 치자면 갈대보다, 아니지, 草露보다 짧은 것이니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하고 용서할 쪽은 갈대이겠네?
{숨어 우는 바람소리를 토닥이는 게 갈대의 순정이라고.}
그러니, “꽃이 지기로서니/ 바람을 탓하랴” (조지훈, ‘낙화’)
결국 질 때 되어 지는 것이고
그칠 줄 모르는 흔들림도 제 속울음이었다는 얘기.
凋落의 계절, 그냥 ‘fall’이라기엔 좀 그렇지만
그야 예전만 못함, 갑자기 쇠퇴함, 수입이 줄어듦, 경쟁에서 밀림, 그런 게 다 떨어짐이니까
맞아, fall이라 하자.
곱게 떨어지지는 않고 흩날리더라고.
그렇게 날리며 스치기도 하더라고.
만난 게 아니니까 헤어졌다 할 것도 아니지만
아무튼 접촉의 횟수만큼 떨어져나가니까
글쎄, 그런 스침들을 亂交라 할까?
{그냥 ‘어지러운 만남’이란 뜻이지 나쁘게 해석할 건 아니네.
도둑키스 후 그냥 잊음이 아니고
수동적으로 싸다니더라도 일정거리를 유지하려고 애쓰면 蘭交라 할 수 있겠네.}
아, 그 ‘어지러울 亂’과 붙어서 좋은 말 되는 게 없더라고
攪亂, 騷亂, 亂行, 亂雜, 亂戰, 亂箭...
그래도 그 어지름에 패턴이 있고 그냥 혼란만은 아니던 걸.
괜히 흩어진 걸 이으면 성좌가 될 것 같기도 하고
分散과 群集의 조화가 萬華鏡(kaleidoscope)처럼 이어지더라.
늘어난 가랑잎들은 엔트로피의 증가가 아니고
放下着이라니까.
버려야 할 것이
무엇인지를 아는 순간부터
나무는 가장 아름답게 불탄다
제 삶의 이유였던 것
제 몸의 전부였던 것
아낌없이 버리기로 결심하면서
나무는 생의 절정에 선다
방하착
제가 키워온,
그러나 이제는 무거워진
제 몸 하나씩 내려놓으면서
가장 황홀한 빛깔로
우리도 물이 드는 날
-도종환, ‘단풍 드는 날’-
오는 이 반긴다고 과도히 맞이할 것도 아니고
가는 이 섭섭해도 기쁘게 보내면서
털어내는 연습하면서
조금만 가지고 조용히 살아가기.
늙음을 견뎌낼 뿐만 아니고 즐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