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하늘에 흰 구름 두둥실
내가 한국을 떠날 때는 ‘강남’이 없었다.
돌아와서는 불편해서 갈 수가 없더라.
{순환노선 2호선 타고 일정구간 통과할 때에도 국경을 건너는 것 같은 긴장감이... 왠지 몰라.}
어떤 송년회를 도곡동 타워팰리스에서 한다고 해서 간밤에 가게 됐는데
역에서 내려 출구로 나오면서 가슴이 옥죄이는 느낌.
“쫄면 안 돼 쫄면 안 돼♪”를 흥얼거리자 좀 풀리더라고.
들어가자면 주민등록증을 맡겨야 한다는데 난 그런 게 없어서...
다니는 사람들 둘러보니 맞먹어도 되겠던데 뭘?
괜히 얼었잖아!
{그 노무현 식 강북/강남 이분법도 잘못된 게 아닌가 싶어.
다 내가 사랑할 만한 내 나라 내 겨레~}
강남은 아니고 덕수궁에서 바라본 남대문, 남산 쪽
그런데, 난데없이 ‘辭世頌’(세상을 하직하는 글)이 떠오르는 것 있지.
白雲買了賣淸風
散盡家私徹骨窮
留得數間茅草屋
臨別付與丙丁童
뭘 팔아 뭘 사겠다는 건지 헷갈리는데
살 買, 팔 賣니까 맑은 바람을 팔아 흰 구름 사겠다는 얘긴가 본데
흰 구름 팔아 맑은 바람 사자고 해서 뭐 크게 다르거나 틀릴 것도 없겠다.
{가진 건 바람뿐이었는데 그건 가버렸고, 그래서 구름 오나 했더니 그것도 바람 따라... 그런 얘기}
살림살이 거덜 나 궁기가 뼈에 사무칠 정도라는데...
上揭 漢詩는 石屋淸珙(元代, 1272~1352) 스님이 남긴 말하자면 臨終偈이다.
두어간 띠집 하나 남았는데 세상 떠나면서 그것마저 불 속에 던져버리겠다는.
몸뚱이 하나 남은 것 스러지면... “스님. 불 들어갑니다.” {에고!}
‘白雲’이 떠오르니까 太古普愚(1301~1382) 스님의 ‘雲山吟’이 따라온다.
山上白雲白
山中流水流
此間我欲住
白雲爲我開山區
흰 구름 희지 않고, 그게 뭐?
흐르는 물이야 흐르지, 싱겁긴...
♫그곳에 나의 집 지어주? 집은 아니고, 그런 데 그렇게 머물고 싶다는.
요게 맛있는 토막, 흰 구름이 날 위해 한 자리 내주네!
묘향산
가친께서 ‘雲山’이라는 호를 가지고는 계셨는데
쓰신 적은 별로 없다.
책 출간할 때 ‘著者 識’ 아래 ‘雲山 000’라고나 하신 정도.
사실 선친은 청산이기는 해도 백운은 아니셨다.
{한 군데 죽치는 품성이어서}
두 개로 이룰 수 있는 집합이 A이거나 B이거나 both A and B이거나 neither A nor B인데
청산과 백운 늘 같이 출연하기로 계약이 됐다고 치고
겹치기출연의 쇼가 그 나물에 그 밥이더라고.
白雲雲裏靑山重 靑山山中白雲多... 이건 太古普愚
靑山都在白雲中 白雲盡沒靑山顚... 이건 西厓 柳成龍
...汲水歸來忽回首 靑山無數白雲中 이건 西山大師
요컨대, ‘산 첩첩과 구름 꾸역꾸역’의 변주곡이다.
실상사에서 바라본 지리산
陶淵明의 그럴 듯한 作亂도 사진 습작기의 유희 같은 것.
靑山倒水中 漁遊白雲間
{청산이 물속에 거꾸로 박혔으니 고기들이 흰 구름 속을 노니네}
초의선사는 “靑山應笑白雲忙”이라 했다.
“어딜 그리 바쁘게 쏘다디냐, 이 친구야? (피식~)”이겠네.
노고단에서
하얗고 정처 없는 구름을 사랑한다던 헤르만 헤세
에고, 이젠 ‘흰 구름(Weibe Wolken)’의 가사도 가물가물하네.
흰 구름 (헤르만 헤세 시, 김정식 곡)
학교에 있어 늦게까지 남을 수 있었던 친구마저 이제는 나와서
백수 넷이 한낮에 만났다.
“나는 김수영이 울고 갈 토룡체라서...” 그러며 꼬드겼는데
醉拳처럼 한 잔 걸쳐야 손이 돌아가는지, 응, 예전보다는 좀...
‘쇠북 종’자를 鍾으로 쓰는 친구의 사인
鐘으로 쓰는 다른 친구가 갈긴
그랬다.
회색이 主色이라고 ‘불만의 겨울’이라 단정하지 말자고.
삼각산 위로 흰 구름 떠가는 게 참 보기 좋구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