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s the river flows
미국에 있는 지인들은 “괜찮겠냐?”며 지대한 관심과 우려로 문안한다.
하, 내가 삼십여 년을 해외에 사는 동안 고국에 국가비상사태에 준하는 일들이 더러 있었으니
지금 그렇게 묻는 이들의 마음도 이해할만하다.
“여기요? 24시간 뉴스방송인 CNN처럼 일 생겨서 떠들 거리 주운 뉴스매체만 신났지 별 동요 없습니다.
왕년에 무장간첩 침투했다고 사재기하던 추태 같은 건 이제 없더군요.
무슨 비리 폭로나 정치적으로 비중 있는 사건들도 잠깐 떠들다가 쉬이 잊히고 말더라고요.
개인적인 현안, 수능, 취직, 군복무, 연애, 건강 문제 같은 산들에 가려 국가 안위니 그런 건 보이지 않던데요.
정치인의 큰 거짓말이나 의혹 같은 것들 덮어지고 자리를 떠나지 않거나 다시 선출되고요.
이상 한국에 나가있는 아무개 특파원의 현지소식이었습니다.”
당장 나라가 어찌 될 것이라면 대통령께서 생일축하연을 즐기시겠는가?
“북한 내부에서도 모르는 일을 우리가 어찌 알겠냐고?”라는 국정원의 푸념이 나오겠는가?
좀 미덥지 않기는 하지만 어쩌겠는가, “부모형제 너를 믿고 단잠을 이룬다” 해두자.
“동요하지 말고 차분히 생업에 전념하라”는 말씀도 있었고 해서
직업은 없으나 해오던 대로 하면 되리라 싶어 차분히 살던 방식 그대로.
{4.19 때 대학생 형님들의 구호처럼 “이놈 저놈 다 틀렸다 국민은 통곡한다”라고 그러면
‘이놈 저놈은 국민 아닌가, 틀린 놈들이 통곡한다?’라는 liar's paradox에 빠지게 되고
양비론의 냉소로 난국 타개에 무슨 도움이 되겠는가
나라고 정견이 없으랴마는 소모적인 논쟁에 휩쓸릴 이유가 없으니까
“속에 든 육조백관, 별도 지시가 있기까지 Shut up!” 하고 가만히 있으면 돼.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가는 것들을 사랑해야지” 정도로 변명 끝.}
“나가서 밥 먹자”라는 소리에 좋다고 따라나선 아내
-2000원짜리 국밥도 괜찮아?
-맛있으면 됐지 뭐. {Deal!}
그거 예전엔 천원이었다고 그러대, 저 봐 고친 자국 있잖아.
옆에 붙은 경구? 그렇구나, 참 짧구나, 사랑만 하기에도 부족한 날수.
낱잔으로도 파는 모양이네.
하기야 한 병 올려놓고 죽치고 앉아있으면 회전이 안 되겠지.
딱 한 잔에 기분 풀어질 이들에게 선심 쓰는 거지 뭐.
여기 천상병 어른 드나들던 데 아닌가 싶어.
-우리 뭐 좀 더 먹고 저녁을 생략하는 걸로 하면 어떨까?
-더 들어갈 데는 없지만, 언제 또 나오겠어? {Deal!}
그래서 처진 어깨지만 눈을 반짝이며 기다리는 이들의 대열에 합류.
-고릿적 얘긴데, 이 동네에 ‘하이든의 집’이라는 게 있었지...
-그걸 어떻게 알아, 가본 적 있어요?
-가보긴, 그때가 언제라고...
지난 일인데, 창고 문 곁에 있어 언제라도 튀어나올 기억들과
듣기만 한, 그러니까 제가 체험하지 않은 것까지 보태어
꼬물꼬물하다가 꾸역꾸역 기어 나오는 날
종3에서 한강까지
길을 걸었다.
정복자가 쳐들어오고 난민이 돌아보고 또 돌아보며 건너고 낙방수재가 울고 넘고
막연한 성공 지망생들이 설레며 밟는 다리
강을 건넜다.
그 길을 다시 가면
봄이 오고
고개를 넘으면
여름빛 쬐인다.
돌아오는 길에는
가을이 낙엽 흩날리게 하고
겨울은 별 수 없이
함박눈 쏟아진다.
내가 네게 쓴
사랑의 편지
그 사랑의 글자에는
그러한 뜻이, 큰 강물 되어 도도히 흐른다.
-천상병, ‘회상 2’-
본문과 관련 없지만, Bobby Kim이 부른 ‘회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