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트워츠미술관과 ‘날개 달린 책’

 

 

이웃 도시라 해도 서울-천안 정도 거리는 되는 데 있는 미술관에 다녀왔다.

The Modern Art Museum of Fort Worth, 우리말로 근대미술관? 현대미술관?

흔히 현대미술관이라고 옮기지만, ‘contemporary’가 현대일 것 같은데?

{소장품을 두고 ‘modern art museum’이라고 한다면

19세기 후반부터 시작하여 인상파, 후기인상파, 상징파로 분류되는 화가들의 작품과

입체파에 영향을 끼친 세잔느, 20세기 초의 그 야단스러운 이들의 작품으로 한정하고

이차대전 이후부터는 ‘contemporary art’로 하자 그럴 수도 있겠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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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이 되어 어디론가 움직이고픈 마음에 발동이 걸려 포트워츠미술관을 찾았으나

Anselm Kiefer의 ‘날개 달린 책(Buch mit Flügeln)’을 보려는 뜻도 있었다.

{뭐 별난 건 아냐. 그리고 그 안젤름 키퍼는 항상 과한 배경 설명 같은 걸 지닌 사람이라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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흉하지 않은 신파 “낙엽이 쌓이는 날 외로운 여자가 아름다워요”-고은, ‘가을편지’-도 그렇겠으나

가을에는 책 읽는 여자가 예쁘다.

‘가을은 독서의 계절’이라는 표어, 등화가친(燈火可親)이라는 말 아직도 사용하는지?

공부하기 좋은 날은 놀기에도 좋은 날이고, 책 읽기 좋은 계절은 나들이에도 좋은데

들앉아 고전을 읽으며 마음을 씻고 갈고 닦고 끌어올려 나는 사람은 “이 아니 아름다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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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나냐고? 책에 날개가 달렸거든.

{날개 있어도 퇴화했는지, 날 필요가 없어서 날 줄 모르게 된 건지, 날지 못하는 새도 있지만.}

이카루스(Ἴκαρος)처럼 깃털을 모아 초(蠟)를 붙여 만든 날개를 타고 난다?

올라가면 올라갈수록 “어떻게 여기까지? 진즉 떨어질 것이...”로 되고 말 것이다.

검색창 지식이랄까 많이 모았어도 날게는 하지 못하는, 올라갈수록 위험해지는 날개도 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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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기야 하겠는가, 그렇게 바라기나 하는 것이고

날지 못했다 하더라도 날기를 노래했던 사람들은 나중에라도 날았으리라.

해서... 게으른 사람이 일없이 해보는 소리 나마 “날개야 다시 돋아라. 한 번만 더 날아보자꾸나.”

{언제 날아본 적 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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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과 현실의 괴리(乖離)? 그런 것 없다.

앙감질(깽깽이걸음)로 얼마나 가겠어?

그러니까 어느 한 편이 나아가면 다른 게 뒤따라 나아가게 되지.

꿈꾸면 날개도 달고 날 수도 있을 것이다.

날 줄 안다고 날기만 하는 건 아니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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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려서 종종거리거나 어슬렁거리며 놀기도 하고 먹기도 하고 자기도 할 것이다.

현실에 안주하는 사람은 날지 못할 것이고

이상을 추구하는 사람은 그러는 동안 살아가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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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selm Kiefer는 ‘책’을 대단한 것으로 여겼다.

책은 지식의 보고이고 종교(宗敎, 으뜸이고 근본적인 가르침)의 경전이니까.

{희랍어로 책(βίβλος)이라는 말이 영어로 bible이 된 것이고.}

 

 

 

포트워츠미술관에는 그의 작품이 두 개 더 있다.

‘Quaternity’, 그걸 뭐 사위일체(四位一體)라고 옮길 수 있겠는지, 네 개로 된 한 벌을 뜻하고,

융 심리학이나 밀의종교(密意宗敎)에서 만지작거리는 개념이기도 한데

그림은 그게 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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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die Aschenblume’, (1983-97)이라고 적힌 걸 보니 14년을 붙들고 낑낑댔던 작품?

흙, 재 같은 재료를 쓰고 말라버린 해바라기는 거꾸로 달고, 흠 총통의 방이라...

큐레이터의 해설을 옮길 건 없고... 아 그게 좀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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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미술이 어렵다고들 하는데, Kiefer는 그런다.

“당연히 어려운 거야. 그건 오락(entertainment)이 아니거든. 소수만이 예술에 대해서 말할 수 있지.

그건 제한구역인 셈이니까.”

아 내 참... 그래 어려워. 뭔지 모르겠으면 보지도 못해? 모르고도 좋다고 할 수 없는 거야?

좋아할 권리가 있듯이 오해할 권리도 있는 것이고

작가/화가/예술가가 어떤 의도로 작업하거나 제조했든지 ‘감상하는 사람 맘대로’의 여백은 남지 않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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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efer는 시인 파울 첼란(Paul Celan)과 유대신비주의 카발라(Kabbalah)에 영향 받았으며

작품에 밀의적(密意的)이고 난해한 상징을 도입하고 강력한 정치적 주장도 많이 포함했다.

독일인으로 아직까지도 어쩌지 못하는 역사의 부채에 쩔쩔 매기도 하고.

다 좋은데-응 뭐가?-, 예술이 철학이나 주장의 매개는 아니잖아?

그냥 ‘아름다워서 느낌 좋음’을 유발하면 되는 거 아닌가?

괴기스러운 것도 아름다울 수 있고{醜美}, 그런 아름다움을 좋다고 그러면 추미애?

Kiefer를 좋아하는 사람은 醜美愛.

나는 뭐 좋아하지는 않지만 둘러보고는 싶어, 그러자면 유럽 여행을... 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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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트워츠현대미술관은 아담한 정도이다.

건축은 사진 딱 보면 누가 했는지 알 것이고.

빼어나게 잘 빠진 것을 ‘대표작’이라고 내세우는 게 아니고

그만의 특징이 드러나고 다 그만그만한 것들을 뽑아내는 이가 명장(名匠)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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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지만 있을 건 다 있다? 그렇진 않아. 많이 부족하지.

그래도 구색 맞추느라 Picasso, Matisse, Braque, Mondrian, Munch, Warhol 등 한두 점씩이라도.

길 건너면 또 그저 그만한, 나름 알찬 Kimbell Art Museum이 있다.

그래도 인상파 화가들의 작품을 제법 갖추었고, 고대 희랍과 로마의 유물도 몇 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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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자세로 2000년을 기다리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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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미술관 다 상설 전시에는 입장료를 따로 받지 않는다.

“너 세금 냈잖아? 그걸로 이런 일들도 할 수 있는 거니까.” 그게 좋은 나라.

 

기분 좋은 나들이였다.

- 공짜라 더 좋았어요.

- 그래도 양잿물은 먹지 맙시다.

 

 

* 음악은 Claudio Arrau의 1973년 연주로 Mozart, Fantasy in D minor, K. 39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