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rry Christmas?

 

집도 절도 없는 사람이 결제라 들앉으려고 하면

청산이 백운에게 자리를 조금 내줄 것이다.

 

축일이라 사원에는 사람들이 넘칠 텐데...

그래도 성탄일에 혼자 경배하기는 그래서 예배당에 갔다.

 

참 좋은 교회로 알려진 데에서 특별찬양이라고 훈련된 동작을 곁들여 부른 노래가

“재미있고 멋진 크리스마스... 우리 함께 축배를 들어요.”이었다.

 

 

나누는 인사가 Merry Christmas~

받고 뭐라 해야 하기에 나도 Merry Christmas!

뭐 잘못된 거라도?

왜 ‘Merry Christmas?’라고 물음표를 달아놓아?

 

이렇게 풀어나가면 어떨까.

Christmas는 Christ와 Mass가 합쳐서 된 말로 ‘그리스도 경배’라는 뜻인데

그러면 ‘Merry Christmas’는 “Let us have a cheerful and lively worship of Christ”라는 뜻으로 나누는 인사인지?

딱히 그릇된 관행이랄 수는 없으나, 생각해보면 좀 거시기하네?

 

아무래도 이 한 날 교인들은 즐거울 텐데

교회 안에서 즐거워하는 동안 즐겁지 않은, 더 즐거울 이유가 없는 사람들도 꽤 될 거라고.

 

 

Merry Christmas 다음에 자주 쓰는 말로는 ‘White Christmas’가 있다.

누적집계로 사상 가장 많이 팔린 캐롤은 “White Christmas”이다.

하얀 성탄절? 거기에 무슨 종교적인 의미가 있는 것은 아니고,

실제로 성탄절에 눈이 와서 거리가 하얗게 덮이는 확률도 그리 높지 않다.

 

아마도 ‘Blue Christmas’가 훨씬 많지 않을까?

우울하고 슬프고 어두운.

성탄절이어서가 아니라 그 날이라고 더 나을 게 없어서.

질병과 가난, 가정불화, 직장 떨어져 살 길이 막막한 아픔, 희망과 동경이 깨진 아픔,

사랑하던 사람과 헤어지고 오해를 풀길이 없는 아픔, 그런 아픔들이 꼭 Christmas라고 도질까마는

이런저런 결핍과 실패, 고통으로 Blue Christmas를 맞는 사람들이 많겠다.

 

첫 번 크리스마스는 어땠을까?

안락과 풍요와 호화를 Merry Christmas의 기준으로 삼는 눈으로 본다면

그건 분명히 Blue Christmas이었다.

{내침을 당해 ‘방’이 아니라 바깥에서, 짐승의 우리에서 몸을 풀어야 했던 산모와

여물통에 뉘어진 아기의 눈으로 본다면 말이지.

밖과 소통하지 않는 이들이 안에서 누리는 Merry Christmas와 대조되는.}

 

 

가장 한심한 노릇은 ‘X-mas’라고 쓰고, 보태어 ‘X’로 읽는 것이다.

 

‘X’는 냉전시대에 월북인사의 이름자 하나를 지워 표시하거나

욕처럼 입에 올리기 거북한 말을 부정하게 여겨 표기하기 어려울 때 사용하는 부호이다.

성도가 설마 그런 의도로 사용하겠는가마는, 몇 자 더 쓰기가 그리 힘들어 ‘X’라 하는가?

“나는 ‘Christ’를 가리키는 의도로 그렇게 썼다”고 항변할 수도 있겠다.

 

그렇다, 특정한 환경에서 소수가 암호처럼 ‘X’-희랍어 chi-를 사용한 적이 있다.

희랍어로 ‘물고기’를 의미하는 말이 ‘익투(튀)스’이고 대문자로는 ‘ΙΧΘΥΣ’이다.

철자 Iota-Chi-Theta-Ypsilon-Sigma는 “Ιησως Χριστος Θεου `Υιος Σωτερ”의 두음을 모은 것으로

“예수는 그리스도-기름부음을 받은 자, 메시야-시오, 하나님의 아들이며, 구원자이십니다.”

라는 신앙고백을 의미한다.

‘X’ 아냐, ‘크리스토스-그리스도’라고 읽어야 돼.

 

 

없는 사람, 아픈 사람들은 꼭 blue Christmas를 맞아야 할까?

아픔을 아는 자만이 사랑할 수 있고, 사랑이란 사랑하는 자의 아픔이 나의 아픔이 되는 것.

나중에 그분은 아픔을 아는 자들의 연대(solidarity)를 분쇄하기 위하여

아픔을 모르는 자들이 체제를 수호하겠다고 만든 법망에 걸려 드셨다.

 

그래도 오늘은 “너희를 위하여 구주가 태어나셨다”라는 큰 기쁨의 소식을 전할 수 있다.

‘임마누엘’이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라는 뜻임을 배워 아는 이들이라면

나가 위로하고 나누어 지면서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러신 분과 겨릿소로 짝져졌음을 알게 될 것이다.

그러고서야 “에잇, Blue Christmas는 저만큼 물러가라. Merry Christmas!”라고 외칠 수 있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