흥
흥? ‘콧방귀 흥!’이 아니고 ‘일 興’
동사로는 “일어나다, 일으키다, 시작하다, 창성하다”라는 뜻이겠고
명사로는 “흥, 흥미, 흥취”, “흥겹다, 흥이 나다, 즐겨 할 맘이 일다”라는 뜻으로 쓰인다.
{‘불효’ 사례를 열거하면 몇 권 시리즈로 엮을 수 있을 거야.}
여러 해 학위과정에 적을 두고 있었으나 이렇다 할 진전이 없었다.
-남들은 일찍 끝나고 돌아오던데... 학비 마련이 어려우면 등록금을 보내주겠다.
-그런 게 아니고요, 꼭 해야 되는 건지... 흥이 나지 않아서요.
-흥? 공부를 흥으로 하냐? 저런, 원, 원... 흥이 나지 않으면 의무를 저버려도 되는 거냐?
-... {유구무언}
얼마나 속상하셨을까?
일찍이 歐陽修가 그랬다.
글씨쓰기(書藝)의 요체는 마음 내켜 즐김에 있다고(要於自適而已).
글씨쓰기 아니라 뭐라도 그렇지, 억지로 할 건 아니지 않겠는가.
심드렁해 공을 들이지 않은 것에서 탁월을 찾아볼 수 없겠네.
阮堂도 書趣를 두고 이리 말했다.
“옛사람이 글씨를 쓸 때도 바로 우연히 쓰고 싶은 마음이 일어서였다.
글을 쓸 만한 정황이란 산음 살던 왕자유가 눈 오는 밤 노 저어 나아가듯
흥을 타고 갔다가 흥이 다하니 그냥 돌아오는 기분일 게다.”
{古人作書 最是偶然欲書者
書候如王子猷山陰雪棹
乘興而往 興盡而返
所以作止隨意 興會無少罣礙
書趣亦如天馬行空}
‘雪夜訪戴’(눈 오는 밤에 대규를 방문함)로 알려진 글의 내용이 이렇다.
왕자유{Cf. 왕희지의 아들 왕휘지}는 산음에 살았는데
어느 큰 눈 내린 밤 잠에서 깨어 문을 열고는 술상 보라고 이른 후에
사방을 둘러보니 “우와!” 너무 맑고 깨끗하거든.
일어나 이리저리 거닐며 좌사의 ‘초은’을 읊다가 문득 벗 대안도가 떠오른 거지.
그때 벗-대규-은 섬계에 있었는데, 바로 작은 배를 타고 찾아갔다네.
날이 샐 때쯤 되어 도착했는데 집에 들어가지 않고 발길을 돌리더란 말이지.
“아니??? 어인 까닭에...” 그러지 않았겠나, 한다는 얘기가
“흥에 겨워 갔다가 흥이 다해 돌아올 뿐 굳이 만나야 할 이유라도?”
{王子猷居山陰 夜大雪 眠覺 開室 命酌酒
四望皎然 因起彷徨 詠左思 <招隱詩>
忽憶戴安道 時戴在剡 卽便夜乘小船就之
經宿方至 造門不前而返
人問其故 王曰 "吾本乘興而行 興盡而返 何必見戴}
보고 싶었던 마음, 그래서 눈길에 밤새 노 저어 찾아갔음. 그게 진실.
마음이 그러면 됐고! 그것도 진실.
{허무 개그 아니라고.}
‘왔다가 그냥 갑니다’-서판석 작사/ 이정선 작곡/ 남궁옥분 노래-라는 노래가 있더군.
{불후의 명곡까지야... 그래도 가사는 제법.}
왔다가 그냥 갑니다
지나다 생각이 나서
할 말도 없으면서
갑자기 들러봤어요
싱겁게 되돌아 다시 갈 걸
왜 왔나 물으신다면
그저 이렇게 웃고 말지요
내 마음 나도 몰라요
사랑은 끝났지만
너무나 궁금해서
먼 길을 찾아왔다가
왔다가 그냥 갑니다
왔다가 그냥 갑니다
만날 수가 없어서
차라리 잘되었네요
왔다가 그냥 갑니다
삶이란 강제일까?
하기 싫은 공부, 어렵기만 한 시험 같은 걸까?
흥이 있어야 살맛나지.
이래저래 가는 세월 아무러면 어떨까만
고운님과 어울려서 알콩달콩 살고지퍼
그것만은 아니리라
다른 것들로 흥이 더해야 할 것인데
에고 흥이 채워지지 않으면?
興盡悲來!
{기쁨은 빠르고 설움은 끝없어...}
애들과 즐겨 부르던 노래 하나: “기름을 채우세 내 등잔에”
Give me oil in my lamp, Keep me burn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