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제에서 1
텍사스에서 오래 산 사람에게야 지평선이 새로울 건 없지만
한국에서 진정한 지평선은 김제에나 있다고 해서
징게맹갱외에밋들(김제 만경 너른 들)을 찾았다.
{나귀 없는 사람이 이 나라 떠나기 전에 언제 가보고 싶은 데 다 들르겠냐, 쩝.}
없네? 너른 들인 건 맞지만...
사통팔달로 뚫린 길, 가로수-좋지도 않은 메티세쿼이아, 일본낙엽송은 왜?-
이런저런 시설물들로 토막치고 가려져서 지평선이랄 게 없더만.
그런데 말이지, 김제 출신 시인 정양이 그러더라.
아줌마, 얼마나 더 가면 지평선이 나와요
여그가 바로 지평선이어라우
여그는 천지사방이 다 지평선이어라우
바람 들옹게 되창문이나 좀 닫으쇼 잉
그렇구나 여기 말고도 이 세상에는
지평선 아닌 데가 없겠구나
보고 싶은 것들은 언제 어디서나
천지사방에 다 가물거리겠구나
-‘지평선’ (부분)-
그러네, 어딘들 지평선으로 둘러치지 않았으려고.
‘너를 향한 이 그리움’이라고나 할지
가까이서 보면 선명할까 다가가면 물러나는 아슴아슴한 像을 떨구지 않는 한
지평선의 그물집에 갇힌 곤충이겠네
끈적거림에 걸려 날 수 없게 된.
부량면에 있는 벽골제는 330년(백제 비류왕 27년)에 축조됐다니까
우와~ ‘오래 된 것의 아름다움 + 그 옛날에도 그런 것이!’의 감탄을 발하게 하는데
고려와 조선조를 지나며 여러 차례 중수했으니 옛 모습 그대로 간직할 수는 없었겠으나
곡창지대에서 더 많이 수탈하기 위해 ‘친절한 니뽄氏’가 관개시설을 확충하면서 아주 망가트린 셈이다.
지금은 수문의 흔적인 '장생거'와 나중에 조금 복원한 둑이 남았을 뿐,
아, 지자체의 관광객 유치를 위한 눈물겨운 노력으로 이런저런 조형물들과 박물관도 지어놓았다.
“와 크다~” 하고 가까이 가서 보면 댓가지로 지은 쌍룡.
제방을 훼손하려는 청룡과 보호하려는 백룡의 다툼이랄까 그런 설화를 배경으로 한다나.
설화로 말할 것 같으면 이런저런 얘기들이 많다.
인근의 ‘신털뫼(草鞋山)’는 당시 공사에 동원된 일꾼들이 얼마나 많았던지
일을 마친 이들이 짚신에 묻은 흙을 털거나 버린 짚신들이 산을 이루어 생겼다 그러고,
‘되배미’ 이야기는 인부들의 수를 헤아리는데 수효가 워낙 많다보니
500명이 들어가는 논을 만들어 되로 되듯 한꺼번에 500명씩 세었다는 것이다.
‘碧骨’이라, 푸른 뼈? 아닐 것이다. 아마도 ‘볏골(벼-고을)’일 것이다, 아닌가?
그래, 뼛골이었을 것이다. 해서 뼛골-祭, 蹄, 梯,
민중의 뼛골이 묻힌 자리, 뼛골을 쌓아 올라가는 사다리, 발목을 잡은 올가미이었던 곳.
중축할 때에 장보고의 잔여세력을 두려워한 중앙정부는 청해진 유민들을 강제 이주시켜
공사에 동원했다는 얘기도 있다.
당나라에서 일본을 잇는 해로를 확보하여 해적을 소탕하고 사해에 무역 길 트던 이들이
망망대해가 아니라 땅바닥을 쳐다보며 흙 파고 돌 나르는 일이나 하게 된 것.
만경, 부안, 정읍, 신태인 등으로 가는 수로와 수문이 표시되어 있는 그림
또 이런 얘기, 희생설화라고나 할까.
신라 38대 원성왕 때 일인데, 벽골제가 무너지게 되어
중앙정부에서는 보수공사를 서두르고자 원덕랑을 현지에 급파했는데...
그때 김제 태수에게는 단야라는 묘령의 딸이 있었더라는 얘기.
중앙파견 기술감독과 지방관리가 업무차 만나는 자리에 단야낭자가 끼기도 하고
그러다보니 단야는 원덕랑의 인물됨에 반하여 연심을 품게 되었는데...
허나 그 사나이는 맡은 일에만 전념하며 한눈팔지 않았고, 뿐더러
고향에서는 월내라는 정혼녀가 기다리는 품절남이었더라나...
한편, 그런 큰 공사에는 처녀를 용추(龍湫)에 제물로 바쳐 용의 노여움을 달랜 연후에야
순조롭게 진행될 텐데,
원덕랑이 처녀 희생을 반대하고 공사를 강행하는 바람에 겨의 완성된 제방이 무너지고 말았다는
주민들의 원성이 높아져 분위기가 아주 나빠졌다지.
아니 하필이면 이럴 때... 원덕랑의 약혼녀 월내낭자가 서라벌에서 진득하게 기다리지 못하고
김제까지 찾아왔냐 말이지.
태수의 머리에 ‘전깃불 번쩍!’으로 떠오른 굿아이디어가 뭐겠어, 월내낭자를 밤중에 보쌈하여 용추에 처넣으면?
대공사는 어려움 없이 완성될 것이고, 백성들의 아우성은 바람 자듯 사라질 것이고,
무엇보다도 딸의 소원을 풀어줄 수 있잖은가,
꿩 먹고 알 먹고 털 뽑아 이 쑤시는 일거삼득이로구나.
계략이 다 들어맞는 건 아니고, 이런저런 변수가 있기 마련인데...
그런 계책을 알게 된 단야는 우선 양심에 찔림이 있었을 것이고
월내가 죽었다고 해서 원덕랑의 사랑을 얻을 것 같지도 않고
사랑하는 이를 두고 다른 데로 시집갈 수는 없었으니...
그래서 월내를 찾아가 “오늘밤만 당신은 내가 마련해둔 방에서 자고 내가 이 방에서...”
{그 담 얘기 줄여도 되겠지?}
암튼, 처녀 하나 잡아먹은 용은 심술부릴 일이 없고, 대공사는 완공을 보게 되었더란다.
지역에 따라 춘향이, 심청이 뽑듯 그곳에서는 ‘단야 뽑기’가 축제의 하이라이트 라데.
원스톱쇼핑처럼 관광단지에 들어선 아리랑문학관.
벌교에 있는 태백산맥문학관과 더불어 “와, 조정래, 현역작가가 그런 대접 받을 수 있구나!”
난 대하소설을 읽지 못하거든.
각 사람의 살아간 궤적이 다 대하소설감인데
남의 얘기, 그것도 지어댄 얘기를 읽으며 내 삶을 낭비하는 시간이 억울하단 말이야.
{그래도 키 높이보다 높이 올라간 원고지 더미, 그리고 꼼꼼한 취재와 깨알노트는 존경할만하대.}
읽지는 않았어도 ‘아리랑’에 들어간 곳들로 남아있는 몇 개는 둘러보았다.
하시모토 농장 사무실, 백구 금융조합, 오오쓰미 도정공장, 내촌마을 같은.
월봉 도정공장, 한창 때는 연간 7만 가마를 찧었다고 그러대.
어둠이 깔리는 들판에 있는 작은 못을 발견하고 내려앉은 오리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