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제에서 3
얼어붙지도 않았고 눈으로 덮이지도 않았지만
그래도 겨울에 떠나니 겨울여행이라 하자.
겨울여행이라고 무슨 절망의 도피행 같은 건 아니지만
빈 배낭 들고 나갔다가 참회와 동경으로 가득 채워 돌아오게 되더군.
{다 먹지 못한 것 싸들고 와서는 결국 버리고 말듯이, 챙겨왔다고 간수하게 되진 않지만 말이지.}
사랑하는 이에게 꽥꽥 소리 지른 일 등 지워지지 않는 부끄러움이 켜로 쌓였는데
감정의 발기와 유출과 표현이라는 게 특정 기질의 메커니즘에 따라 갈 때까지 가는 거라서
후회했다고 해서 “다시는 그러지 않을게”라는 약속 이행으로 이어지지는 않더라고.
보기 싫은 사람이 보고 싶어지는, 그게 뭔지 암튼 그런 꿈틀거림도 있네.
사랑한다고 말하기는 그래도 보고 싶다는 말 정도야 다시 해도 되는 거 아닌가?
{꽃이 지고 난 다음에 “그때 말은 안했지만 너 참 아름다웠어”라는.}
“정신 사납게 ‘귀신사’가 뭐야?” 그러기 전에 ‘歸信寺’인 줄 알면, 거 참 좋은 이름이로세!
그 절집의 개 이름까지 그럴 듯해서 ‘보리(菩提)’라 하는데 불철주야 臥禪三昧로 용맹정진,
‘해탈(解脫)이’라는 다른 녀석은 몇 달 전 출가했다는데 雲水衲子로 어느 하늘 밑을 가고 있는지.
676년(문무왕 16) 의상대사가 창건했다는데 오래 됨의 장엄함을 보여주기에는 왜소한데
연로하여 줄어들고 기운 없어진 어머니의 체구를 보는듯한 안쓰러움을 자아내게 한다.
단청 칠하지 않아 단아한 대적광전 뒤로 나있는 계단을 오르면 뭐가 있을까?
팽나무 아래 벌쓰듯 서있는 게 힘들어진 탑이 있고, 무슨 짐승인지 그 위에 남근석을 세웠담?
더러 꽃을 달고 있는 차나무들 사이와 대숲 너머로 가는 마실길이 있는데
귀신사-싸리재-동곡마을-금평저수지-원평장터로 이어지는 별로 길지도 않은 구간이지만
하루에 김제를 다 돌아야하니 아깝지만 다음에...
{동학꾼 농민군이 진격하거나 우금치 전투에서 살아남은 소수가 패주하던 자취를 언제 따라가 볼지...}
귀신사는 양귀자의 소설 「숨은 꽃」의 배경이 되기도 하고, 영화 「보리울의 여름」의 촬영 장소였다고 한다.
금산사.
조계종 신도증이 있으면 그냥 들어갈 수 있다고 해서-경로우대로 해결되었지만-
“아, 조계종이구나!” 했다. 그게 불교사찰을 찾아온 게 아니었던 것처럼.
일대가 미륵신앙이 남다른 곳이고 해서, 기독교로 말하자면 이단 쪽으로 흐른 게 아닌가 했던 착각 때문?
600년(백제 법왕 2)에 창건됐다고 하나 762-6년(경덕왕)에 진표율사가 중창한 때로 시점을 잡아야 할 듯.
Facelift 공사 중인 미륵전 안에서는 불공이 있어 들어가기가 뭣해 humongous 미륵불상은 뵙지 못했다.
크다. 거물숭배에 저항이 있어 대교회나 사찰에 가면 불편한데
母岳山의 음기랄까 품어주는 모성이랄까 그런 기운 덕에 공황발작에 이르지는 않았다.
국보, 보물들이 다수 있는 절이다.
절에서 나와 얼마 되지도 않은 거리에 작은 예배당이 있다.
1908년에 지었다니 백년이 넘었구나.
당시 풍습을 고려하여 남녀유별이라 예배 중에도 서로 보지 못하도록 기역자로 지어 따로 앉게 했다.
증산법종교본부와 구릿골약방 등 姜甑山의 활동 흔적, 치고 들어온 대순진리회의 동심원,
정여립 生居地 등이 금산면 내 멀지 않은 데에 산재해있어
전주에서 일찍 나와 바삐 움직이면 아침나절에 둘러보고 원평 장터쯤에서 점심을 들 수 있겠다.
그렇게 나아가는 길에 금평저수지에서 물안개가 피어오르는 바람에 발목이 잡히고 말았다.
물안개라는 게 그렇다, 삽시간에 퍼졌다가 그만큼 빨리 씻은 듯이 가시기도 한다.
오래 된 이름으로는 ‘오리알터’, 천 년 전에 이미 道詵國師가 그리 불렀단다.
정말 오리들이 무지 많지만, 그래서 “낙동강에 오리알 떨어지듯”에서처럼 ‘오리 알 낳는 터’는 아니고
{저수지는 1961년에 만들어졌다.}
‘올(來) 터’라는 뜻.
누가 온다는데? 오실 그 분.
아 누구냐니까? 미륵불. 이름을 그리 붙였지만, 이름이야 아무러면 어때?
그렇게 모든 종교에는 다소간에 급진적인 messianism의 待望이 있기 마련인데
이 동네는 별나게 그 기다림이 간절하고 진하고 강하다.
개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좋다는 백성 아닌가?
{뭐 극락과 천당은 설정만 해두고 가기는 싫어하지.}
그런데 오늘도 아니고 내일도 아니고 먼 훗날-문자적 해석으로는 滅後 56억 7천만년이라지만-
얼마나 먼 훗날이냐 하면 까맣게 멀지는 않고 잘 모르긴 하지만 당겨질 수도 있는 훗날
천지개벽하여 새 하늘과 새 땅이 도래한다고 그러네만 오늘을 사는 나와는 상관없는 일?
그래도 이 백성은 참고 빌며 기다리더라고.
***
‘언제’ 때문에 꼬리를 물게 된 생각인데...
‘오늘’을 기점으로 시간의 흐름을 거스르자면 어제-그제-그끄제/엊그제라고 하고
나아가는 방향으로는 내일-모레-글피-그글피가 되겠다.
來日은 한자이고 겨레말에는 오늘 다음날을 가리키는 말이 없다?
{정작 한자문화권에서는 昨日-今日-明日이지 하지 않나... (자신 없는 얘기)}
{고려 때 ‘鷄林類事’에 보면 “明日曰轄載”라는데, ‘轄載(할재)’의 음가를 하제/ 올제/ 후제로?
언제 떨어져나가 안 쓰게 되었는지 모르지만 그런 말이 있기는 있었나보다.}
오늘은 ‘온 + 알(日)’, ‘이미 와버린 날’을 가리키는 말이지만
‘오(來) + 날’이기도 하니까
온 날과 올 날을 지금 한꺼번에 사는 거지.
더 이상 생각하기 귀찮으면 “오! 늘!”이라고 하자.
{신파조로 “순간에서 영원으로”라고 그러면 딴 얘기가 되겠네.}
내친 김에 뱀발 하나 더 그리는데...
어제는 ‘어저께’의 준말, 그제는 ‘그저께’의 준말, ‘께’가 뭔데?
“대충...쯤”이라는 뜻 아니겠어?
그러니 지나간 일은 정확히 기억할 건 아니고 “하루 전? 이틀 전? 잘 모르겠네.”
{그렇다면 정치인들의 “기억나지 않는다”라는 오리발도 도덕성 부재 탓만은 아니니까 봐주자고?
그건 ‘언제’로 대답할 게 아니고 ‘예, 아니오’의 문제이니까...}
첫 키스가 언제였는지 마지막으로 안아본 게 언제였는지...
꿈이었나봐.
{이래서 약간의 통속성-이슈 선점에서 밀린 여당에서 포퓰리즘이라고 하는-도 갖추고.}
설날 아침 차례, 찾아갈 데, 찾아올 이 없어 괜한 끼적거림이나?
내어다보진 않고 돌아보기나 하다니...
‘오리알터’에서 비롯된 잡생각 물안개 흩듯 떨치고
구호 외치듯 “마라나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