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성에서 2
훈련소, 보충대 입소하거나 자대 배치되고 신고식을 할 때 시작하는 질문:
-너 집이 어디야?
-서울입니다.
-서울이 다 니 집이야? (퍽, 퍽)
-(욱) 종로구입니다.
-스갸, 종로구가 다 니 집이냐구? (퍽, 퍽)
-{처음부터 주소를 댈 걸 그랬나?} 서울특별시 종로구 화동 1번지입니다.
-이 스키 요령피네, 누가 주소 대랬어? 니 집이 어디 있냐구? (퍽, 퍽)
반세기 전 버전이지만, 아마 지금도 ‘사용 중 이상 무’일 것이다.
-너 지난 주말에 어디 다녀왔는데?
-남도
-남도를 다 돌았냐고?
-보성
-보성? 녹차밭 보러?
보성에 대기업에서 하는 다원만 있는 것도 아닌데, 딱 ‘보성 = 녹차’로 “Pass!”가 되더라고.
하긴 음식으로도 별미로 꼬막정식 정도 꼽을 수 있을까 이웃인 순천, 장흥, 해남에도 떨어지고
아무래도 일부러 찾아갈 만한 데가 모자라기는 하지.
득량만, 율포해수욕장, ‘부용산’, ‘태백산맥’ 합쳤다고 해도 딴 데 가는 길에 들르면 모를까
딱 ‘보성’만 바라보고 가기는 좀 그렇지.
그러니까 보성 어디를 다녀왔냐니까? 노동면.
뭐 노동면을 훑듯 한 건 아니고, 한밤에 도착하여 하룻밤 자고 이슬떨이로 나온 걸음이었다.
밤참, 조반, 차 한 잔, 딱 그것만으로 다녀오기에는 먼 길이었네.
그냥 A씨네라 하자.
노동운동하다가 귀농한지 십여 년 지나 땅마지기 꽤 되고 콤바인도 있고 하니 부농인 셈인데
바깥양반은 꼴통이라 정체를 알릴 것 없고 부인은 성질 좋고 부지런하고 음식 잘하더라고.
들입다 들이미는 먹거리들, “응 이게 다?” 아쉬운 듯 받아먹고 나면 그게 애피타이저, 전채...
시작은 초란에 들기름, 청국장, 땅콩 간 것을 넣은 것으로.
다음에 손두부 묵은지 찢어 싸먹고, 순두부에 양념장 한 술 해서 후루룩, 끝인가?
도토리묵, 감자묵, 놓아기르는 닭 잡아 만든 요리, 전, 슴슴하니 효소로 무친 산나물들...
그러고는 “배가 터져부렷당께” 까지는 아니지만, 싸르르 하더라고.
{잘 먹고 나서 그렇게 되면 엄청 손해지.}
그러고는 나가 평상에 앉아 ‘얼씨구’(지역 막걸리) 한 사발에 터지는 소리.
-그러닝게 여기는 서편제여?
-우리사 그렁거 모르닝게 따질 것 읍고만.
-남원, 순창, 구례는 섬진강 동쪽이니까 동편제, 광주, 나주, 담양, 보성은 서쪽이니까 서편제
섬진강이 못 건널 경계도 아니고 소리꾼이 오가다보니 이제 그런 구분은 유명무실해졌지.
고수도 없고, 장구도 없고, 추임새 제대로 넣는 이도 없지만, 비닐 함지 엎어 두들기며 한 가락.
들어온 고양이 호강하는 게 눈꼴시어 혼내주려다가 주인에게 얻어터지고는 주눅 든 멍멍이
몇 배 째인지 이번에 낳은 새끼 여덟 마리 젖 뗄 때 됐는데도 어미를 못살게 군다.
싫은 기색 없이 감당하는 양순이.
짐승이나 사람이나 새끼는 어미 살 파먹고 자라는가 보다.
‘다채(茶彩)’, 차 만들기 체험과 농원(農園) 숙박이 가능한 정원이다.
아저씨는 나다니며 놀기나 하는, 그래도 그렇게 다니며 가져온 들꽃들로 예쁜 동산 이뤘고,
출가하지 않은 딸이 차 만들고 손님 맞는다.
사철 중 어느 때가 가장 좋겠냐면 목련 필 무렵이 그래도 그중 낫지 않겠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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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기서 은목서를 만날 줄이야.
금목서 향이 더 달달하지만, 그래도 은목서 쪽이 더 상큼한 셈
해 뜨고 한참 지나면 냄새가 옅어지지만, 새벽에 퍼지는 그 냄새는 비싼 향수에 비길 바가 아니지.
{돌아가는 길에 선암사에서 멋지게 잘 자란 은목서가 여러 그루 있음을 알았다.
그게 웬만큼 크지 않고서는 나무 틀거지가 영 안 나거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