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anta Fe에서 2
Santa Fe Plaza는 동네 놀이터 규모의 녹지대이고 주변에 가게와 식당들이 늘어섰으니 쇼핑센터이기도 하지만, 역사적 표지물(landmark)들이 늘어선 오래 된 도시의 심장에 해당한다. 산타페에 사람 만날 일이 아니고 관광차 다녀온 거라면 플라자를 들렀다 온 셈이다.
거기서 먼저 꼽을 것은 1867년에 세운 전몰용사 추모탑(The Soldiers' Monument)이다. 그것은 1862년에 Glorieta 전투에서 쓰러진 용사들을 추모하기 위해서 세웠다는데, 기단(基壇)의 한 면에는 이런 비명(碑銘)이 있다.
“To the heroes who have fallen in the various battles with ( ) Indians in the territory of New Mexico”
( )로 표현한 빈 칸에는 ‘Savage’라는 말이 새겨 있었는데, 1973년에 누군가가 쪼아 지워버렸다고 한다.
오늘날처럼 다원화된 사회, 그리고 진즉부터 부르짖던 ‘melting pot’ 문화론에서는 써서는 안 될 말이지만, 아직도 ’개척’이라는 정복전쟁이 끝나지 않았던 19세기에 인디언을 야만인이라고 부르는 것은 실례도 아니었으니까.
흥미로운 것은 Santa Fe 가까이에서 흩어져 살던 Pueblo 인디언들의 다섯 governor들은 ‘야만적인 인디언’이라는 표현을 당연시했다는 것이다. 그건 호전적, 적대적인 떠돌이 Apache와 Navajo 인디언들을 지칭한 것이고, 평화적인 자기들과는 관계가 없는 이슈였다니까.
Santa Fe(=holy faith)라는 이름에 걸맞게 플라자 주변에는 성 프랜시스 대성당(The Cathedral Basilica of Saint Francis of Assisi), Loretto Chapel, 좀 떨어진 곳에 미국에 현존하는 가장 오래 된 예배당-built in 1610, rebuit in 1710)이라는 San Miguel Mission, 그 외에도 여러 성당들이 흩어져있다.
일부러 그런 옷을 챙긴 것은 아닌데 가서 보니 New Mexico는 온통 electric blue-cyan, turquoise-와 burnt orange/감물 색뿐이다. 하늘이 그렇고, 땅이 그렇고, 흙벽돌(adobe)로 지은 집들이 그러니까.
업무상 여행이 아니라면 interstate freeway와 통행료 징수하는 고속도로로 다닐 이유가 있겠는가, 구국도, 지방도로를 타고 이름도 모를 rural route의 성긴 그물에 걸리는 재미가 괜찮겠네. 대륙을 빗금으로 지르는 (Historical) Route 66를 들락날락.
울산 사는 친구와 함께 다니면 ‘그림이 되는’ 곳에서는 알아서 세워주는 편의를 즐길 수 있다. 잘해주는 착한 사위이나 그래도 아쉬운 것은 달리는 차 안에서 지나치는 풍광(風光)을 담아보겠다고 이리 비틀 저리 비틀하며 카메라를 대어보아도 서기는커녕 속도를 늦추지도 않는다. 어렵사리 말을 꺼내 부탁해도 못 들었는지 무시하는지 손톱만 물어뜯으며 전진, 또 전진. 내가 운전하지 않아도 데려다주는 건 고맙지만, 쩝... 사실 세우고 내려서 뭘 잡아보려고 하면 그저 그렇다. 놓쳐서 아까운 것들, 지나쳤기에 아름다운 것들.
사막성 기후랄까 비가 별로 오지 않으니 황야에 듬성듬성 키 작은 떨기나무들이 자라고, 어쩌다가 비가 쏟아지면 평소에 하상(河床)을 드러내는 마른 강(wadi)에 맹렬한 기세의 물길이 생긴다. 잠깐, 아주 잠깐, ‘지난여름 갑자기’ 같은.
{그렇다고 “없었던 일로...”는 아니고 재발 가능성이 아주 높은 휴화산이랄지.}
{아무 데로나 흐르지는 않고, 한 번 가봤던 길로.}
고속도로를 피하고 Turquoise Trail을 따라 Albuquerque로 가는 길에 Sandia Crest 산지가 우뚝 솟아있다. 높이는 해발 2마일, 숫자 ‘2’가 작아 보인다면, 10,678 ft, 익숙하지 않다면 미터로 3,255 m. {한라산이 1,950 m, 지리산 천왕봉은 1,915 m} 그 높은 데를 지나는 길에 어떻게 올라갔냐고? 꼭대기까지 차로 갈 수 있다. 주차장에서 걸어 올라가는 높이가 50 미터나 될까. 설악산과 지리산을 끼고 있는 지자체마다 곤돌라를 설치하겠다고 아우성인 터에 악용할 가능성이 있는 모델을 제시하는 것 같지만, “그랬기에 자연보존에 오히려 유리하다”는 입장도 아주 설득력이 없는 것은 아니다.
백인인데도 타서 초콜릿색이 된 할아버지는 쓰레기 주워 배낭에 집어넣는 일을 하신다.
하고 싶어 하는 일에 자원‘봉사’라는 말 붙일 것도 없고.
출장 보고는 아니니까 시시콜콜 다 읊을 건 아닌데...
마침 보름, 할머니와 부모는 공연에 갔고, 할아버지 혼자 아가를 돌보는 밤.
남산만큼 부른 배로 겅정겅정 뛰며 악쓰는 Kelly Clarkson의 야외공연이 뭐가 좋다고...
V. 'Cloudburst', 'The Grand Canyon Suite' (Ferde Grofé, Leonard Bernstein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