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나간 얘기

 

추위랄 것도 없어서 “그해 겨울은 따뜻했네”로 기억될 만한 세월일까 싶었는데

기어이 한번 본새를 드러내겠다는 건지

며칠 추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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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춘추위라는 게 있기는 한데

하필 입춘이라 해놓고선?

 

실제적으로는 立春이 “이제부터 봄입니다”라는 환영포스트가 아니라

“좀 더 기다립시다, 결국 봄은 오지 않겠습니까?”라는 격려문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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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한 기대도 없고 부질없는 虛禮라 여겨 春帖을 써 붙이지 않는데

‘축 입춘’이라는 문자메시지를 받았다.

뭐 좋은 일이 있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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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만히 귀 대고 들어 보면 얼음장 밑으로 흐르는 물~

아니다. 겨울이라고 언 적이 없었거든.

더러 얼음장 덩달아 떠내려 오기도 했지만 늘 흐르지 않았니?

내 맘에 강물 끝없이 흐르네!

 

진이가 소세양을 보내면서 그랬잖니  {'奉別蘇判書世讓'}

明朝相別後 情與碧波長

내일 아침 서로 헤어진 후에도

사랑은 푸른 물결 따라 길이 이어지리

{아시죠, 당신 향한 내 마음이 그러리라는 걸? 원컨대 당신도...  (피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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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고 싶은 것 다 먹고 가고 싶은 데 다 가고 헤어지기 싫은 사람 자주 보고

남은 날 그렇게 준비(?)할 것도 아니지만...

겨울나들이 한 번 더 하자고 짐 챙기는데

저런? 배낭이 없는 거라.

북한산 다녀오던 날 어디다 두고 왔는지... 전혀 생각이 안 나는 거라.

밥 먹었던 집에, 지하철 lost & found에 연락해봤지만 헛일.

{나이 들어감에 따르는 증상을 두고 서로 흉보다가 일단 내 편에서 할 말 없어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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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녀본 데, 만난 사람들, 살아온 날들 돌아보니까

고르자면 고운 것들도 있었고

그런 것들 빼고는 그저 그랬지만

{잘난 건 따로 놓여 저만 잘난 게 아니고 섞여있어 같이 좋아 보인 거지.}

전체적으로는 다 괜찮았던 것 같아.

 

{이제 와서 그 때가 더 좋았다든지 그가 더 사랑스러웠다든지 할 건 없지.}

 

“시작할 때는 좋았는데...” 그럴 것도 아니지.

한번 좋았으면 다 좋았던 거라고.

꽃은 지켜본다고 시들지 않을 것도 아니고

사랑스럽다는 눈길 한번 주고 지나가면 되는데

가장 아름다웠던 때로 기억할 수 있으면 좋은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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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래서 판독불가능해진 팩스문서처럼

잘 간수하지 않은 기억은 유효기간이 지나면 사라지고 마는데

그 왜 마술잉크라는 것 있었잖아

적당 농도의 염분이 함유된 액체에 담갔다가 꺼내면 선명하게 되살아나던 글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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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울 수 없는 서러움이나 수그러지지 않는 희망 때문에 거북했던 젊은 날에는

{사실 서럽지도 않았고 그다지 뛰는 가슴으로 바라지도 않으며 폼만 잡았지 뭐, 청승떤 거지.}

마주치는 사소한 해프닝에 큰 의미를 부여했다.

{우리 만남은 우연이 아니야? 그거 우연이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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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리지 않고 내리는 비, 쬐는 햇볕 받으면 되는데

제몫이랄 게 따로 있나, 그만해도 괜찮은 건데

그러면서 “Gracias a la vida!” 그러면 되는데

특별대접? 저한테 더 잘해주셔야 된다며 무리한 요구를 하면서

제 욕심의 무게에 허덕이는 게 무슨 신앙생활이겠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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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련은 많고 염치는 없어서

더 사랑하고 싶다면서 부담은 발라내고 싶지만

사랑은 아픔과 함께 오는 거니까 그걸 불평할 건 아니고

쪽빛 아니라도 저만하면 너무 파란 하늘 {겨울하늘로는 저게 어딘데?}

“하늘을 우러러 한 점...” 그러기에는 너무 망가졌지만

심심하게 덤덤하게, 그래도 어쩔 수 없이 미안함을 조금은 드러내는 얼굴로

“즐거운 여행이었습니다.” 그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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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에게 피해 주지 않는 부적응 내버려두고

그래도 좋다는 사람들에게 나도 그대를 좋아한다고 대꾸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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