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alentine's Day에 하늘을 날며
Corny joke, 썰렁개그, 철지난 웃기는 말이겠지만
‘旅窓의 客愁’라는 게 있어요.
{나무 뒤에서 기다리고 있던 사람이 짜잔~하고 나타나면 부둥켜안고는 팽그르르 돌고 같이 넘어지던 장면처럼.}
말은 우스운 말이지만... 그게 실체라고요. 맞아요, 그런 게 있어요.
여관에서 씻고 나서 닦다가 엄지발가락 아래 껍질 벗겨지는 걸 보며
“자작나무?” 그러다가 {무좀이겠네 뭐, 한센까지는 아니고} 피식~
연상은 나타샤로 이어지고
얼굴 하얀 애, 고향에 두고 온 情人이 떠오르고
하염없는 눈물까지는 아니지만
마침 열린 문으로 쳐들어오는 진눈개비 탓도 있고 해서...
{돌아가면 간밤에 깔린 눈 햇빛 나며 스르르 스러지듯 할 테니, 그냥 객수라고 해두자고요.}
마침 Valentine's Day인데요, 것도 예전처럼 야단스럽지 않네요.
그렇잖아요, Christmas도 그렇게 되었고.
그렇지요, 축일이 워낙 많다보니
제축(festivity)에 용납되던 예외성(extraordinariness)과 과도함(excessiveness)의 범위가 줄어들고
강도(intensity)가 약화된 거지요.
“내일 일은 난 몰라요 지금 기쁨으로 만족해요”라는 ‘흥청망청’이 시시하게 돼버렸지.
한 번도 풍족한 때가 없었던 농촌에서 그래도 아주 가끔은 즐기던,
한 집의 애경사가 그대로 마을 전체의 들썩거림이 되던 때가 그립습니다.
추석과 설날을 아직도 크게 여기며 민족대이동이 남아있음이 얼마나 다행한 건지.
{그나마 집안 갈등이 깊어졌다는 둥, ‘연휴 신드롬’이라는 둥 하는 얘기 돌아다니지만요.}
사랑하고 싶다.
부족해서가 아니고, 넘치는데도 허기진 듯한.
우물가의 죄 많은 여인을 두고 지은 노래가 있어요.
“만족 주지 못한 것 구했었네 헛되고 헛된 것들을.”
그런데요, “Come and quench the thirsting of my soul”이라는 간구(懇求)도 갈망이라고.
해서 불가에서는 사랑‘쯤’은 ‘목마름’(渴愛)으로 깔보더라고요.
목마름을 끊으면? 滅이겠네.
존재의 滅絶...{A-C}
눈발 더러 보여 진눈개비, 추적거림은 계속되는데
기온이 조금 올라가면 겨울비, 밤새 차가워지면 눈
우산 쓰기도 애매하고 그냥 맞고 돌아다니다가는 감기 걸리기 마침인 날
마음이 좀 쓰이긴 했지만, 그까짓 궂음에 비행기가 못 뜰까...
해서 떴어요.
뜨고 나서
집들이 작아지고, 蛇行川이 굽이침이 보이고 정수리에 눈을 뒤집어쓴 산들도 아래로 보이다가
아, 구름 위, 쨍~
“흐리고 곳에 따라 소나기가 오기도 하겠습니다”라는 일기예보 있잖아요?
그렇게 발표할 때에 구름 위를 나는데?
내 영혼에 햇빛 비치니 그 영광 찬란해~♪
구름 위에 또 구름 있고
각 구름층은 다른 빠르기로 이동하네.
얼마나 날았을까 지루할 때쯤 되니까
“저를 타주셔서 고맙습니다. 다음에도 이용해주셔요. Happy Valentine,”이라는 기내방송.
이제 지나갔지만요, 저도 “Happy Valentine!” 공중에 날리는 멘트.
장미.
물류비용이 들더라도 북미 온실에서 키우는 것보다는 타산이 맞아 그런지 Honduras에서 공수된 것.
겨울 지나 내 뜰에서 핀 게 모양은 그저 그래도 향기야 그만이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