離騷 (이소)
‘離騷(이소)’라 했다고 Thomas Hardy의 ‘Far From the Madding Crowd’를 떠올릴 건 없겠네.
소설 제목은 시골 사는 이들의 인간관계의 분요함을 반어적으로 나타낸 셈인데,
Hardy가 빌려온 Thomas Gray의 시 ‘Elegy Written in a Country Churchyard’의 구절은 이렇거든.
“Far from the madding crowd's ignoble strife
Their sober wishes never learn'd to stray,”
{그렇다고 ‘귀거래사’나 “이니스프리 섬으로 돌아가리라”를 읊을 건 없네.}
‘離騷’는 屈原(굴원) 원작에서 따온 말.
“강물이 맑으면 갓끈을 씻고, 강물이 흐리면 발을 씻으리라”는 어부의 말을 굳이 옮긴 것은
굴원이 고결하고 강직했다지만 그도 세상에 미련을 두었고 억울함을 풀지 못했음을 드러낸다.
글러먹은 세상에서 저 혼자 바르고 모두가 취했는데 저만 깨어있다고 할 것 없다고.
“만수산 드렁츩이 얽혀진들 엇떠하리”에 넘어가라는 말은 아니다.
“주려 죽을진들 菜薇(채미)도 하난것가” 그럴 것도 아니다.
싸움을 피해 온 사람이라면 조용하고 평화로운 게 좋기만 할 텐데 뭐 그리...
이렇게 나갈 얘기가 아니었고
왜 ‘밤을 잊은 그대에게’라는 라디오 심야 프로가 있었잖아?
낮밤이 바뀜을 몸이 따라가지 못해 딱 두시면 깨어 앉게 되니 말일세...
그믐이니 달도 없고, 달이 있다 해도
잔 들어 권코자 하니 달이 먼저 취해서 말이지...
그러니 사람이 있어야 하는데, 이 밤에 누굴 부르겠냐고?
올 사람 있다 해도 有情함만이 진실인 줄 알고 징징거리면 재미없거든.
집착, 원망, 질투, 타산 없음, 즐거움 뒤에 얻음 따르지 않아도 괜찮고, 섭섭하여도 눈물 없이 돌아섬
허망할 게 없는, 그러니까 좋아했으면 좋은, 떠나고 나서도 좋아 떠남이란 없는
그런 무정한 사귐을 나눌 이가 몇이나 되겠냐고?
{“樂而不流 哀而不悲”가 正樂이라고.}
그러니 혼자구먼.
어떤가?
-회상, 주상관매도- (장은정, 2011)
出仕하지 못한 사람이 제자 하나 두지 않았다고 해서 쓸쓸할 게 뭔가?
꽤 괜찮아 보이는 사람이 天命을 자각하지 못했다면, 그것도 하늘의 뜻이렷다.
“하늘이 나를 만들었으니 반드시 쓸모가 있을 거라”(天生我材必有用)
말은 그렇게 하면서 놀기만 하는 사람?
아무 것도 하지 않음으로 쓸모가 있다니까.
-舟上觀梅圖- (檀園)
“老年花似霧中看”
아, 낮밤이 제대로 들앉아야 할 텐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