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과 돌

 

꽃을 좋아해 비구 두엇과 눈 속에 핀 매화에 취해도 보고

개망초 하얀 간척지 농투성이 농성에 덩달아도 보고

노래가 좋아 기성화장수 봉고에 실려 반도 횡단도 하고

버려진 광산촌에서 중로의 주모와 동무로 뒹굴기도 하고

 

이래서 이 세상에 돌로 버려지면 어쩌나 두려워하면서

이래서 이 세상에 꽃으로 피었으면 꿈도 꾸면서

 

-신경림, ‘돌 하나, 꽃 한 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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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 좋아하는 게 폐광촌에서 주모와 뒹구는 것과 인과로 연결될 것 같진 않지만

“그래, 나도 꽃을 좋아해” 하다가

“아니구나, ‘노래가 좋아’에 걸리나, 암튼 나도 노랠 좋아해” 그러다가...

 

돌은 버려지는 것? 꽃으로 핀다는 게 뭔데? 지속성의 차이로 치자면 돌은 영원한데?

시비 거는 게 아니고 부추기어 떠돌이의 입담으로 팔도유람기나 들어보려는데

“응 나 바빠, 지금 막 터진다고 해서...” 그러며 애 받으러 가는 산파처럼 서둘러 떠나데.

 

나도 내려가 보려는데, “택도 없다 아직도 멀었다” 말리더라고.

그러고는 놓치는 거지, 상춘인파 피한다며 꾸물거리다보면 낙화 후에야 닿게 되더라고.

그렇게 절정은 만나지 못하고 전성기를 지나게 되더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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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아니더라도 여럿이 찾아왔겠고 나만 기다린 건 아닐 테니까 꽃에게 미안할 건 없지만

“다음 꽃필 때는 꼭...”이라고 말해보는데

나무에는 다음이 있을지 모르나 그 꽃은 그 때뿐이지 무슨 다음?

하긴 찾아가겠다는 이에게도 다음이 있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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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속은 하지만 자신 없는 거지.

세상 어디 그리 호락호락한가

세월은 저만 흐르지 않고 온갖 것을 떠내려 보내거나 지울 것이다.

떠밀려가면서 얼음덩어리처럼 녹아내리는 자신을 보게 될 것이다.

 

좀 있으면 강변에 늘어선 나무들이 꽃을 달 것이고

또 며칠 지나 꽃잎들 눈송이처럼 날릴 것이다.

같이 흘러내려가는 꽃잎들 곁눈질하다가

바람에 물결이 거스르듯이

그때의 즐거운 시절로 되돌아가듯 회상에 빠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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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을 연인처럼 품고 사신 兮山 박두진 선생께서 수석 몇 점을 내주신 적이 있다.

돌은 돌, 그게 뭐?

차마 버리지는 못해서 이사할 때마다 괜한 짐이었다. 애물도 아니고.

이름도 뭐라는지 잊었지만, 이름에 걸맞지 않은 몰골로 어느 구석에 처박혀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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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도 사랑받으면 숨을 쉬게 되고

몸 안에 쟁여두었던 달과 별 햇볕, 바람 비 눈, 단물 짠물 다 살아나서

자체발광의 매력과 촉촉한 눈빛으로

사랑하는 이를 사랑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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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려진 돌이라도

꽃으로 피어나지 못해도

 

의심하지 마셔요 당신과 떨어져 있는 나에게 조금도 의심을 두지 마셔요

의심을 둔대야 나에게는 별로 관계가 없으나 부질없이 당신에게 고통의 숫자만 더할 뿐입니다

 

-한용운, ‘의심하지 마셔요’ (부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