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빠지지 않은 것들
꼭 그리로 가려고 했던 것은 아니나 가려던 곳에서 멀지 않아 어느 알려진 가마(窯)를 들르게 되었다.
연기가 나기에 사람이 있는가 했는데 두드려도 문을 열어주지 않았다.
전화번호 문의 등을 거쳐 도예가와 어렵사리 연결되었으나 마침 서울에 올라와있는 중이라며
꼭 보고 싶거든 이웃동네에 사는 제자를 시켜 들어가게 해주겠다고 한다.
아니 뭐 그럴 것까지는...
해서 그냥 바깥이나 기웃거리다가 돌아가려는데 친구가 찻주전자를 하나 들고 차에 탄다.
-그거 뚜룩친 거 아니오?
-파치들 깨버린 더미에서 용케 살아남았기에... 뚜껑은 없고...
그러고 보니 문하생 습작이랄까, 첫눈에 작품이랄 것도 없는 서툰 솜씨임이 드러난다.
둘러보니 백자대호랄 만한 것들이 굴러다닌다.
그건 잘 안 나온 거! 그렇다고 덩치가 그만한 걸 보쌈하긴 좀 그렇지?
그 찻주전자는 버린 게 틀림없으니 집어가도 될 거야.
선친의 생가는 경기도 광주군 남종면 분원리에 있었는데, 지금은 팔당호에 수몰되었다.
‘분원’이라는 지명은 司饔院(사옹원) ‘分院’이어서였다.
뒷동산 콩밭에서 김매다보면 조심해도 사기 파편에 손을 베기 일쑤였다.
{아버님이 다니셨고 나중에 어머님께서 교사로 계셨던 분원소학교 뒤에 있는 백자박물관 터가
우리 집 콩밭이었다.}
왕실에 그릇을 대는 官窯에서 제대로 빠지지 못한 것이 나오면
그것이 민간으로 새나가 유통되지 않도록 아낌없이 破碎(파쇄)해 버렸기에
그렇게 버린 것들이 켜를 이루고 쌓여 파고 파도 또 나오더라는 얘기.
제대로 나오지 못한 것이라면 꼭 깨버려야 할까?
“제품이 아니라 작품입니다”까지 아니어서, 그래 작품이라 치고
기계로 찍어내도 다 똑같지는 않고 더러 조금, 아주 조금 떨어지는 게 나올 수 있겠지.
그게 못쓸 건 아니거든.
Quality control 차원에서 시장에 내놓을 수 없다면 뒤로 빼돌려서 사용하면 안 될까?
{일부러 흠을 내어 보세공장으로 빼돌리던 시절도 있었지.}
“토기장이가 그릇을 훼파함같이”(사 30:14)라는 말씀도 있다.
만든 이의 맘에 들지 않아 깨버리겠다는데 만들어진 것이 뭐라 하겠는가?
그런데... 그렇게 깨버리려고 했는데...
실수였을까? 자비였을까?
온전한 채로 남아나는 게 있더라고.
{제주, 산청/함평... 그런 데서 공비토벌대에 의해서 억울하게 학살당한 양민들!
그 난리 통에도 어떻게 살아남은 사람이 간혹 있기는 했지.}
겨우 건짐을 받은 그릇은 발견 즉시 확인사살 하듯 확실하게 부셔버려야 할까?
선친께서 어머니(先慈) 가신 후에 홀로 22년을 사시면서 쓰시던 그릇들은
짝도 맞지 않고 이 빠지고 금가고 破傷(파상)한 것들이었다.
아버님도 가신 후에 한국에서 몇 해를 더 사는 동안
“손님 치를 것도 아니고 자리 잡고 살 것도 아니니까” 그러다가 이제 떠나게 되었는데
누구에게 주었다고 좋다고 할 것도 아닌 것들, 이제는 버려야겠네?
상한 갈대를 부러 꺾지 아니하고 끄름만 내는 심지라고 부벼 끄지 않겠다고 하셨는데...
그래도 용도 폐기해야 할 때가 있으리라.
그러고 보니 내가 좀 처량해지는 거야.
잠깐 있다가 그만 두신 ‘경비 아저씨’는 왕년에 중견회사의 이사로 명퇴했다고 그러시데.
그 들고 온 찻주전자 말이지, 주전자로 쓸 건 아니거든.
{말이야 바르지, 그러기엔 많이 부족하지.}
거기다 들기름 좀 따러놓고 김 잴 때 쓰면 되지 않을까?
아이디를 ‘白磁陶窯(백자도요)’라 한 게 僭濫(참람)하다고 그럴 것까진 없다 해도
뻔뻔하네, 창피한 짓이지.
뭐 백자라고 다 국보급, 보물급은 아니고
한 가마에서 나왔어도 터지고 이지러진 게 더 많더라고.
예쁘지 않아도 쓸모 있고
쓸모없다 치고 존재 자체를 부인할 수는 없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