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 오는 날 여수에서

  

단비이니까 감사해야지 불평할 일 아니다.

여행 중에 만난 비 하루 만에 그치지도 않을 듯한데

“마지막으로 알고 떠났는데...”라고 말할 것 없고

그동안 맑은 날들 이어지지 않았느냐?

{머피의 법칙 같은 것 적용되지 않았다.}

 

머리도 젖고 바지도 젖고 신발도 젖고 카메라도 젖고

뭘 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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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양병원, 애양원교회, 순교기념관, 손양원 목사 가족묘-순교자 묘지-를 찾았다.

사랑은 닿아야 할 것이다.

몸으로만 닿게 될까?

먼저 마음으로, 그리고 그러기로 하자면 끝까지 마음은 닿아있을 것이다.

마음이 희미해지는 것 같고 몸으로의 그리움에 압도당하면

무리하게 육체의 접촉을 도모할 것이다.

 

{손양원 목사님은 환자의 피고름을 입으로 빨기도 하셨다고 그러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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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센병은 피부병이다.

고칠 수 없을 때까지는 天刑으로 여겼다.

사회에서 격리되었고 수용소 밖을 나올 수 없었다.

세상에 다가오지 못하도록 투석하였고 매타작으로 죽음으로 몰기도 했다.

그런 이들에게 희망의 불씨를 살리고 치유와 회복을 가능케 한 이들은

서양에서 온 크리스천들-선교사, 의사, 간호사, 기타 봉사자-이었다.

 

{제국은 선할 수가 없고 ‘반미’는 사안과 경우에 따라 필요한 일이기도 하지만

사랑 때문에 희생을 기쁨으로 알고 평생을 섬긴 ‘개인들’의 생애는 얼마나 아름다운지.

감사를 놓쳐서는 안 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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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나이에 와서 몇 십 년씩 섬기다가 은퇴 연령이 되어 제 나라로 돌아가곤 했다.

 

 

사랑, 진부하지만 낯설게 다가오기도 해서

뻔한 속임수에 또 넘어가기도 하지만...

사랑, 없다면 어떻게 살 수 있을까?

{세상이 생겨나지도 않았을 것이고... 그런 담론은 필요 없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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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아들의 무덤과 뒤에 있는 손목사님과 사모님의 무덤

 

 

손양원 목사님.

설명할 수 없는 일을 어쩔 수 없이 풀어야겠기에 생긴 이야기가 신화(mythos)이다.

그분의 사랑의 크기와 깊이를 기사-사실 보도, 늘 그렇지는 않지만-처럼 전달해도 그것은 신화이다.

“어쩌면 그럴 수 있을까”라는 의미에서.

 

{친절하지 않은 사람이 디테일의 힘을 알면서도 상세정보를 전달하지 않는 이유는

필요한 사람이라면 찾아볼 것이고 그렇지 않은 이들에게야 뭐땜시...}

 

 

이게 좀 황당한 비유이기는 한데...

비로자나불 곁에 있는 협시보살이랄까, 그렇게 예수님 곁에서 시중드는 분 같아.

혹 유마거사에 비할 수 있겠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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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양원 예배당-지금은 성산교회- 뜰에서 비에 젖은 동백 두 송이를 보다가

동인, 동신 형제가 생각났다.

 

 

 

그러고는 향일암으로 갔다.

불났잖아? 그러고 얼마나 복구가 됐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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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 날이라면 백운교 청운교 건너 파란 하늘이 보였을 텐데...

 

 

“그 파란 물 눈에 보이네”는 없었다.

“검푸른 바다위에 비가 내리면 어디가 하늘이고 어디가 물이요” 조차 알아볼 수 없이

안개까지 자욱한데

물소리 때문에, 절벽 밑을 때리는 물소리 때문에, 바위를 핥는 물소리 때문에

큰 낙차가 있는 폭포 소리 같기도 하고 졸졸 흐르는 작은 시내 소리 같기도 한 흔들음 때문에

소리는 듣고 보지는 못하는 사람들 생각이 났고

서편제 생각도 났고

그저께 찾아갔던 보성의 得音亭 생각도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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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심 없는 이라면 “거 참 물건이요잉~” 하고 지나갈 수도 있겠지만

그 신묘한 곳에 자리 잡은 기도처의 영험함에 감응이 오는 일도 흔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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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 말 더러 남았지만 그만 하자.

 

 

내일 금오도 비렁길을 걷고 싶은데

비는 계속 온다고 그러니 파란 물 볼 수 없다면

나만큼 걷지는 못하는 짝을 끌고 갈 이유도 없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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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고 보니 돌산도였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