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양에서 1 동백림

 

‘동백림’이라고 하면 아직도 다 드러나지 않고 찜찜하기만 한 ‘東伯林 사건’을 떠올리는 이도 있겠지만

여기서는 동백 숲(冬柏林)을 이르는 말.

동백림으로는 강진 백련사, 거제 학동 등을 꼽을 수 있겠지만

광양시 옥룡면 추산리, 백운산 자락에 있는 옥룡사지(玉龍寺址)는

이름값이 뜨지 않아 그렇지 빼놓을 수 없는 명품 숲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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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선 국사는 옥룡사에서 35년간(864-898) 머물다가 입적했는데

절터의 흠결을 보태고 채우는(裨補) 뜻으로 동백나무들을 심었다고 한다.

동백나무 숲이 1100여년을 넘어 이어졌다는 이야기이지 나무야 그렇게 오래 살겠는가

그래도 300년쯤 된 나무들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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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은 언덕 너머 품격이 좀 떨어지는 절이 있기는 한데 그렇게 돌아도 잠깐 거리

짧다고 정말 ‘잠깐’으로 지나가는 발걸음은 너무 무정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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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천 그루에 달하는 동백나무가 보여주는 붉은 빛깔은 들여다보아야 찾을 정도이다.

{늦추위가 있어서였는가?  이맘때라면 벌개야 할 것이다.}

노인 세 분이 시시하다 싶었는지, 필 때가 안 된 건가 지고 난 다음인가를 두고 이러쿵저러쿵 한다.

“피고지고 하는 거지요.”라고 괜히 껴들었다.

“맞다, 명답이다”까지는 괜찮았는데...

진정 부러움을 담은 눈으로 훑어보더니 “좋은 때다~” 그러는 게 아닌가.

아니, 기껏 차이나야 나 중학생 때 고등학생쯤 되었을... 나도 경로우대 급인데...

그래도 착각에는 커트라인이 없어 “내가 한 달만 덜 먹었어도 연애를...”로 망상은 치닫더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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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백꽃은 세 번 핀다고 그러대.

나무 위에서 한 번, 땅 위에서 한 번, 사람 눈 속에서 한 번.

“落花인들 꽃이 아니랴 쓸어 무삼하리요” 그런 글줄도 있지만

동백꽃은 팍 시들고 쪼그라져 떨어지는 게 아니잖아.

떨어지고도 한참 예쁘더라고.

동백 숲길을 가자면 어디다 발 디뎌야 될지 난감하잖니

왜 “화랑 담배 연기 속에 사라진 전우야~” 전우의 시체를 넘고 넘는 것 같기도 하고.

차마 발로 밟을 수 없던 게 눈에 밟히고 마음속에서 또 피더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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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의 ‘(to) miss’라는 말, 사전적 정의를 늘어놓은 말들 보면 to fail to~로 시작되더라고.

1: to fail to hit, reach, or contact

2: to fail to obtain

3: to fail to comprehend, sense, or experience

4: to fail to perform or attend; 등등.

그러니까, 과녁을 못 맞히거나, 목적이나 표준이나 욕망에 이르지 못하거나

기회를 놓치거나, 탈것을 놓치거나, 사람을 만나지 못하거나, 이해하지 못하거나

약속, 의무 등을 지키지 못하거나, 뭘 빼먹는.

 

거기다가 하나를 보태자면

to feel or regret the absence or loss of someone or something!

누구 혹은 무엇인가의 부재나 상실을 실감하고 애석히 여긴다는 뜻.

 

그러니 “I miss you”가 무슨 말이겠어?

보고 싶어.

我想念你, 很想你.

 

불어로는 “너를 결핍했다”(Je vous manque)라고 그러더라.

에고, 에고, 고, 고, 에휴, 에휴, 휴, 휴~~~

까짓 떨어진 동백꽃 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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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눈빛이 깊어지긴 했지만 붙잡지 않았다.

또 볼 테니까.

 

We only part to meet again.

 

In the hope to meet shortly again, and make our absence swe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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