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성에서

 

벌교 오일장을 놓치지 않으려고 일부러 날짜 택하여 갔는데

하, 거기만 그렇겠냐만 그 오일장이라는 게 이름만 남은 거더라고.

웬만한 머릿수 있는 마을이라면 대형마트나 상설시장이 들어섰으니.

그러면 특정한 날을 정하여 기다리고 즐기는 멋과 맛이 없어진 거네.

{이제 여우는 어느 날 맘 놓고 어슬렁거릴 수도 없겠다.

사냥꾼들이 마을 처녀들과 춤추는 저녁이 없어졌다면 말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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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흥 동강 장, 과역 장, 보성 벌교 장을 따라 돈다는 호떡 파는 아지매와 눈높이로 말 섞는데

일행이 눈총 주어 일어났다.

제석산에서 수석 채취하여 산다는 영감이 낮술 하고 벌건 얼굴로 안내하겠다고 따라다녀서

분위기도 좀 흐트러지고.

 

돼지국밥, 내장국밥은 안 먹겠다는 사람과는 남도를 같이 다니기가 좀 그렇다.

대갱이(운구지, 개소겡) 맛 좀 보겠다고 찾아간 집이 더럽다고 오만상을 찡그리는 바람에 나마저...

{철이 아니라서 구경 못했고 대신 문절이 무침은 맛보았지만 특별한 맛은 없더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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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절망둑어가 표준말? 잡히는 동네에서 알려진 이름으로 부르면 됐지, 망디, 꼬시래기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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득량만.

방조제 위, 혹은 갈대숲 사이로 걸으며 이쪽으로 고개 돌려 보면 물비늘과 뛰어오르는 작은 고기들

저쪽으로 돌리면 보리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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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성?하면 차밭!처럼 되어 그것 말고는 별 게 없는 줄 아는데...

아무튼 지나면서 외면할 이유는 없으니까

회천리에 있는 제2대한다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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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뉴월 뙤약볕만 아니고 이른 봄 하루 햇볕도 큰 차이를 이루겠지만

누런 차밭을 보니 “저래서 어디 우전 작설 잎을 따겠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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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기서 걸어서 닿을만한 영천리에 보성요(窯)가 있다.

신정희 일가만큼 이름을 얻지는 않았지만

송기진 선생은 나름 노력한 만큼 거두는 게 있으리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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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릇 하나 맘먹고 사자면 “어휴~” 하게 되는 고가이지만... 사실 장인들은 배고프더라고.}

 

寶城이라, 보배 寶자가 들어가서 얘긴데

타고난 내재적 가치(intrinsic value) 때문에 보배인지

귀인이 인정해서? 절대다수의 선호에도 불구하고 희소해서?

특정한 쓰임새(instrumental value) 때문에 보배가 된 건지?

 

왜인이 걷어가지 않았더라면 그때는 그냥 굴러다녔을 조선막사발이

이도다완(井戶茶碗)이라는 일본 국보로 대접을 받았겠는지?

 

 

파상(破傷)한 그릇들, 일부러 깨지 않았더라도 대우받기는 그른 것들을 보다가

성구 한 절이 떠올랐다.

“건축자의 버린 돌이 집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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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주름이 굵어진데다가 봄볕에 무방비로 돌아다녀선지 검버섯이 짙어졌다.

갖다 붙이는 말? 덤벙에 스민 얼룩은 ‘wear and tear’가 아니고 존귀를 더함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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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한다고 “까짓 거 하나”로 던져줄 능력도 의사도 없지만

아내는 ‘명품’이라는 단어 자체를 혐오한다. {고마운 건가?}

 

명품 아니면 다 허접한 것인지?

아니면서도 닮은 시늉하는 건 ‘짜가’인지?

가짜라 치고 욕할 건 없네, ‘그의 그다움’은 진짜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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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부러 찾아가려고 한 건 아니었는데 같은 영천리에 있으니까... 초은당(草隱堂).

잡지에 소개되고 TV에도 나오고 해서 예전처럼 숨겨진 곳은 아니고

‘펜션’으로 알고 찾아가서는 불편을 경험하게 되겠지만

착한 이들의 얘기와 섬김을 기대한다면 뭐...

 

경옥고, 토종꿀, 매실액, 천연염색 등 살아갈 게 많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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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안에 물을 끌어들이고... 방바닥은 한산모시에 콩댐 세 번, 들깨댐 덧대어...

 

 

군 접계에 철조망이 쳐져있거나 여권을 제시해야 통과하는 건 아니니까

다니다보니 화순, 곡성, 장흥 넘나든 것 같은데...

할 일 미뤄놓은 채 시한은 다가오는데

쏘다닌 것만으로 모자라 다닌 데 다 보고해야 하는가, 누구한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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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가에 이런 집들 많이 남아있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