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바다
북평 오일장은 매 3, 8일에 열리는데
그게 제법이여.
수천 어린이가 조회 서던 초등학교 운동장에 자라서 가보고는
“애개, 이게 그리 커보였다니...” 그러듯
향수의 원천을 거슬러 올라갔다가 “버혀지고 없구료” 하듯
오일장도 아직 남은 데라고 찾아가보면 그저 그런데
어라, 동해시-‘묵호’가 어때서 바꿨을까?- 북평동에 서는 장은 아직도 북적북적 활기차더군.
그쪽으로 봄나들이 가려거든 장날을 끼고 가라고 권하고 싶네.
빨리 가자면 영동고속도로 타고 강릉에서 내리지 않고 달리면 되겠는데
이른 아침에 출발하면 장터에서 국수, 메밀묵, 전, 전병 같은 걸 들 수 있겠지.
일박하면 느긋, 아니어도 촛대바위, 몇몇 동굴들 중의 하나쯤 보고 돌아갈 수 있겠지만
그렇게 쫓기면 봄기운 담아올 수 없으니까
일박이일로 일출까지 보고 삼척, 태백으로 해서 오든지
이박삼일이라면 정선, 영월에서 미적거려도 될 거라.
{산간인지라 좀 지나 중순쯤 되어야 정선도 꽃동리가 될 걸.}
묵호등대공원에 ‘海에게서 소년에게’라는 시가 음각되어 있는데
글쎄, 문학사적 가치로는 어떨지 모르겠으나 좀 그러네,
김기림의 ‘바다와 나비’ 쯤이 더 어울릴 듯.
{모더니스트의 겉멋을 감안해도 쌈빡한 건 틀림없거든.}
아무도 그에게 수심(水深)을
일러준 일이 없기에
흰나비는 도무지 바다가
무섭지 않다.
청(靑)무우밭인가 해서
내려갔다가는
어린 날개가 물결에 절어서
공주처럼 지쳐서 돌아온다.
삼월(三月)달 바다가
꽃이 피지 않아서 서글픈
나비 허리에 새파란
초생달이 시리다.
나비가 움직이는 게 꿀만 찾아서는 아닐 거라고.
꽃을 기대했지만 없으면 할 수 없고, 그저 제 꿈 따라 가는 거지.
“그리 가지 말아라 거미줄에 걸릴라 이리이리 오너라 나비야”라는 인도 없어도
끌리는 대로 가는 거지, 정처 없어도 말이지.
억새에 뭐 베듯, 짠물에 날개 젖듯
무모한 나섬에 대가를 지불했다고 치고 무익한 방황은 아니니까.
졸다 깨어 눈에 들어온 봄바다를 두고
충청도 식 유머인지, 뭐라? 구장집 마누라는 방뎅이도 크고 젖통도 크고 잠도 푸지게 잘 잔다고?
허니까? 얘가 정말...
미끈덩 인물도 좋은
구장집 셋째 아들로 환생해설랑
서울 가 부잣집 과부하고
배 맞추고 싶었지
-김사인, ‘봄바다’ 중-
바다가 조용하고 나대는 것들 없다고 해서
바닷가가 한가한 건 아니다.
배 나간 동안 뭍에서는 그물을 깁는다든지
사람과 사람 사이에는 언제나 뭔가 진행되고 있거든.
혼자 있을 때라도.
거기까지 가서야 일출을 놓치면 안 되지.
어둠 살라먹은 해를 삼키고서야 허기졌다 할 수 없지만
그 왜 이름을 곰치국이라 하고 김칫국에 미끈한 껍질 조금 넣은 국물 있지?
후루룩 하고는 또 떠나는 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