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utti 1 (꽃구경)
날 참 웃긴다.
젖으면 젖은 날 마르면 마른 날 흐리면 흐린 날 맑으면 맑은 날
하늘 마음대로지 어쩌겠는가.
명분 없어 나가지 못하는 날에는 눈이 부시게 푸르더라고.
바다를 찾아왔더니 억수와 강풍이 반기더라고.
하루는 참을 만하니까 기다려보지 뭐.
내일도 비오면 다시 와보기로 하고 가지 뭐.
그런 마음으로 잘 자고 일어나보니 비는 그치지 않았데.
비 맞으며 나섰는데 개더라고.
좀 있으니 쾌청이라 할 만하데.
아마도 빗물이겠지~ 했던 것도 마르더라고.
수취거부로 반송된 편지 받아들 때
무안하긴 해도 처참할 건 없거든.
떳떳하지 못하던 그때, 조마조마하던 ‘그때 나’가 안쓰럽긴 하지만
담담하게 읽어내려 가다가 “참 잘 썼다”고 대견해하는 ‘지금 나’는 쾌청?
그런가?
전성기가 한참 지나고 기분만 옛날 그대로인 가수가
만당의 성원을 이룬 비싼 음악회에서 여전히 유들유들.
절정이 아니면 아무 것도 아닌 건가
{굽어보는 기분 잠깐이고 썰렁하던 걸 뭐.}
내려오는 길도 좋은데...
그러나 좀 겸손해지긴 해야 되겠지.
“Regret? I had a few.” 정도가 아니고 절절한 뉘우침이.
온갖 봄꽃 다 피었는데
아무리 남쪽 끝이라지만 모란은 아직 없더라고.
해서... “다행이다 정말 다행이야” 그러긴 하는데
간밤 들은 게 있어 새나오는 노래는 그게 아니네.
모란은 벌써 지고 없는데
먼 산에 뻐꾸기 울면
상냥한 얼굴 모란 아가씨
꿈속에 찾아오네
나 좋아 비바람 맞으며 걷고 또 걷는 길에서
“세상은 바람 불고 고달파라 나 어느 변방에 떠돌다 떠돌다”까지 나갈 건 없다.
하긴 실연한 사람만이 “사랑의 슬픔만 영원히 남았네”라고 노래할 건 아니니까.
연상이 그렇게 나아가니까 동백! 동백 얘긴데
주먹봉숭아, 맨드라미...처럼 무지막지한, 아니지, 애처로운 동백
반도 끝 벼랑길에서 뚝뚝 떨어지는 동백과는 달라서
카멜리아, 그 서양여자 레이스속옷 같은 카멜리아를 은근히 깔보기도 했는데
화사하다고 슬픔이 없는 건 아니고
안됐기는 마찬가지더라고.
{투신했는데도 많이 망가지지 않아서 정말 아깝더라.}
아름다운 것은 손에 닿지 않는 데에 있다?
제가 무슨 수로부인이라고 꺾어다 바칠 사람을 찾고 있는가?
“작품에 손대지 마시오”라는 경고 말이지
가까이 있어도 마음에 그어둔 police line 같은 게 있어서 넘질 못하는데
길들여진 가축처럼 그까짓 펜스 부수지도 못하고 안에 갇혀 있는데
넘기로 하면 못 넘을 것도 아니잖아?
아서라, 난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해야지”라는 뜻으로
떨어진 것들 거두었을 뿐이네.
약한 사람, 없는 사람에게도 세상이 멋지고 아름다운 곳이라는 동화를
고장 난 유성기처럼 부분만 반복하다가
선거에만 능한 집단을 한번 더 믿어보자는 사람들의 순진함에 기가 막혀서
어디까지 얘기했는지 다 잊어버렸고 소리도 더 이상 안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