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왔어요

 

웬 적바림은 그리 많은지

잊지 말자고 적어둔 것이라면 들춰보고 정리해야 했던 것들 흩어진 채로 쌓여만 갔고

몇 학기 가르치는 동안 준비했던 자료와 학생들의 텀페이퍼 등이 ‘토지’ 원고지 분량을 넘어서서

벚꽃 질 때 흩날리는 꽃잎처럼 사라질 것들 나눠주기로 했다면

‘친애하는 서울특별시 시민 여러분’들에게 한 장씩 고루 돌아갔을 것이다.

종잇장들 다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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챙겨야 하는 것들에 대한 평가가 달라서

공인 감정가를 중시하는 쪽과 추억의 낭만적 가치가 더 소중한 쪽 사이의 긴장이 피곤했지만

그럭저럭 짐 싸서 부쳤다.

버린 잡살뱅이도 많고 필요하지 않지만 또 끌고 가는 것들도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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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구가 먼저 빠져나가는 바람에 며칠 맨바닥에서 잤고

불편한 모텔에서 또 며칠 잤고

와중에 “가기 전에 한 번만 더” 보자는 이들 찾아 지방도 다녀왔고

만석 비행기로 14시간 시차가 있는 곳으로 와서

새 아파트, 새 카펫과 새 페인트 냄새 나는 곳을 치워가며 또 며칠 잤다.

 

사흘 후에는 항공편으로 딸네 집에 가서

쓰던 차 물려받아 이틀 꼬박 운전해서 끌고 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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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소 정신 나서는 아니고 아직도 무거운 몸에 해롱거리고 있지만

인터넷, 전화 드디어 개통되었기에 잘 왔다는 인사나 하려고.

불특정다수에게 상세보고 하는 게 우습기도 한데...

궁금했던 사람 있기나 한지

사신을 주고받기는 그렇지만 마음으로는 그게 아닌 사람 혹시?

{가면무도회 같은 블로그 홀에서 별 걸 다 기대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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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왔다고요.

소식 기다린 사람 있을지 모르지만 로그는 꼼꼼히 적어가는 편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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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 보니 구름이 참 곱네.

구름은 보기는 좋은데

닿을 수 없고 만질 수 없고 먹을 수 없는 것.

보기만 좋아도 좋은 것.

희망도 딱 잡을 수 있는 게 아니지만 바라보며 기뻐하는 것.

사랑도 그렇지 않은가 싶어

먼발치서 바라만보며 안타까워하면서도 고개 돌리지 못하는 것.

{사라질 때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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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름 말고도 좋은 것 늘어나리라. 살던 데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