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위에서
필라델피아에 사는 딸의 집에서 내가 살게 된 댈러스의 집까지는 도로 길이가 2,460 km이다.
새로 차를 사자면 정착 비용이 많이 들 테니 제 쓰던 차를 가져가라고 해서 시작한 여행.
독감 바이러스가 귓속에 있는 달팽이관을 건드리는 바람에 평형감각이 떨어져 어질어질,
그런 상황에서 “하루 1,200 km씩 운전하면 이틀이면 갈 것이다”, 그렇게 생각했는데
모두들 “에이 말도 마쇼, 가능한 소릴 해야지”로 말리는 것이었다.
그래서 “까짓 거 길에서 이틀 밤 자기로 하고 하루 800 km씩 가기로 하면 되겠네?”로 역제안
그러니까 서울-부산 간이 꼭 400 km, 천릿길이니 서울-부산을 하루에 왕복하는 셈이다.
“아니 댈러스에서 누가 기다려요? 할 일 있어요? 천천히 갑시다.” 그렇게 나오는 바람에
600 x 4, 그러니 모텔에서 사흘 밤을 자고 나흘에 걸쳐 가는 셈이다.
Kentucky와 West Virginia를 거치도록 코스를 잡으면 350 km쯤 늘어난다.
왜? “마루를 구르며 노는 어린 것”이라는 노래 있잖아, 또 John Denver가 부른 노래도 있고.
그런데 생각해보니까 이맘때 옥수수 자라는 소리는 미국 어디서라도 들을 수 있고
Almost heaven? 그런 데 없거든.
해서 그냥 Pennsylvania, Delaware, Maryland, Virginia, Tennessee, Arkansas, Texas주를 잇기로.
아하, 하루 육칠백 km, 우습게 봤는데 그게 아니더라고.
주제에 첫날은 Shenandoah, 다음날은 Old Smoky Mt. 국립공원을 들렀는데
그것 때문에 130 km 정도씩 추가되었고 산에서 지체한 시간
간간이 억수로 쏟아지는 뇌우 때문에 서행, 비 피해 멈춘 시간 등을 추가하니
어둑해서야 예약한 숙소에 들어가게 되더라고.
오늘이 셋째 날, 고단해서 어디 기웃거리지 않고 곧장 숙소까지 달려왔다.
내일은 다섯 시간만 운전하면 집에 도착한다.
에휴, 옛날 같지 않더라고요.
원기 회복하면 혹 다시 꿈을 꾸게 될까, 오래 다니지 못하겠던 걸요.
이상 친구들에게 인사로 상세 보고한 셈.
지난 어린이날이니 아직 석주도 되지 않았네, 천성산 내원사 계곡에 갔더랬는데...
뭐 여기도 그만한 데는 많고요,
서울에서 흰 꽃 퍼레이드가 아직 끝나지 않았다고요?
아하, 여기에도 그런 꽃들 있어요.
꽃과 나무야 어디라도 있지요.
알만한 꽃들이니 이름표 달 필요 없겠지요.
산딸나무에 핀 꽃들 시들고 추레해졌는데
응달에서 자란 나무 늦게까지 꽃을 달고 있더라고요.
일찍 피지 못한 인생이 나중에라도 “지금은 내 때”라 할 수 있는 세상이길.
가을에 곱게 단풍이 들고 수형도 좋은 나무 아래 앉아있다가
꿀이 뚝뚝 떨어지는 꽃이 툭 머리에 내려앉은 걸 무심코 털어냈는데
머리카락은 끈적끈적, 벌과 파리가 날아들더라고요.
그냥 이렇게 소식 전하고 차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