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월, 숲

 

 

진즉 순화된 말이 나서야 했는데, 기운 잃긴 했지만 아직도 돌아다니는 ‘마이가리’라는 왜말

당겨쓰거나 받거나, 또 군대에서는 진급되지 않았으나 직책상 가라(?)계급장을 다는 경우를 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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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오월이라는 게 유월에 있어야 할 기후를 당겨오는 바람에 일찍 더워질 뿐만 아니라

꽃도 한꺼번에 폈다가 썰물처럼 가버려서 차례차례 피고 짐을 차분히 완상하는 재미도 누리지 못하게 되었다.

 

그러면 6월의 기후와 자연은 예전의 7월 같게 되었는지?

꼭 그렇다기보다, 빨리 더워지고 여름이 길어졌다고 보면 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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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철과일’이라는 말도 별로 의미가 없다.

예전에는 현충일 공휴일이 호국영령을 추모하기보다는 딸기농원을 찾아가는 날로 여길 만큼

딸기는 6월초에 나오는 것으로 알았지만

언제 마트에서 딸기 못 보는 철이 있던가?

내 고장 칠월은 청포도가 익어가는 시절? 먹자면 언제 청포도 못 찾겠는가.

지구온난화의 평균흐름보다 훨씬 앞서서 한국은 뜨거워지고

벌판은 온통 비닐하우스로 덮여있으니

이제 한국은 아열대작물을 재배하는 지역이라 할 수 있겠다.

 

6월, 5월에게 미리 주워버려 5월과 다른 6월의 특이함을 보여줄 게 남지 않은 걸까?

{에고, 장마가 쳐들어오는 것 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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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는 입씨름할 사람이 없어서 심심했는데...

유월이라, 듣기야 육월보다 낫지만 왜 육월이라 그러면 안 되는데?

그야 맞춤법으로 그렇게 규정했으니까.

그 한글 맞춤법이라는 게 그러네.

제6장 제52항: “한자어에서 본음으로도 나고 속음으로도 나는 것은 각각 그 소리에 따라 적는다.”

그 참, ‘본음으로 나는 것’은 무어며 ‘속음으로 나는 것’은 무언지?

만난(萬難)/ 곤란(困難), 분노(忿怒)/ 희로애락(喜怒哀樂), 승낙(承諾)/ 수락(受諾),

토론(討論)/ 의논(議論), 목재(木材)/ 모과(木瓜), 팔일(八日)/ 초파일(初八日),

십일(十日)/ 시방정토(十方淨土), 시왕(十王), 시월(十月), 10월 18일!

모르겠어, 오륙십(五六十)이라면서 오뉴월이라 하고, 유월로 읽게 되는 건지.

그게 무슨 ‘활음조(滑音調) 현상’이라나, 발음이 쉽거나 듣기에 유쾌한 음으로 바뀌는 걸로 설명하는데,

정해놓고 그렇게 부르다보니 그 편이 듣기 좋게 된 건지

어긋난 건데 다수가 그리 하는 걸 허용하자니 ‘특별조치’가 필요했던 건지?

{에이, 그 왜 짜장면과 자장면 스토리 있지?}

 

그러면 예전에 어떤 이들이 ‘융니오’라고 하던 것도 무슨 현상?

{일부 경상도 사람들이 뉴욕을 ‘누뇩’이라고 그러던 것도 모를 일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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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월에는 사람들이 숲을 보게 된다.

간 것을 어쩌겠는가, 꽃 말이지.

 

해서 王安石은 ‘初夏卽事’에서 그랬다.

 

綠陰幽草勝花時  짙은 숲 그윽한 풀이 꽃 필 때보다 좋구먼.

 

그렇더라, 사람들은 끊임없이 대체만족을 찾아내긴 하지.

그런데, 숲이 있어 꽃이 피는 것이고

숲은 잎들 돋아난 후 꽃의 아름다움을 가리지 않도록

나름 배려하여 꽃이 스포트라이트를 받게 했을 것이다.

 

숲이 그런다고?

그건 사람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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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희성 시인, 사십년 전쯤 젊을 적에 빼내신 건데...

 

인간의 말을 이해할 수 없을 때

나는 숲을 찾는다

 

숲에 가서 나무와 풀잎의 말을 듣는다

무언가 수런대는

그들의 목소리를

알 수 없어도

나는 그들의 은유를 이해할 것 같다

 

이슬 속에 뜨는 해와

그들의 역사를

그들의 신선한 의인법을 나는 알 것 같다

 

그러나 인간의 말을 이해할 수 없다

인간이기에

인간의 말을 이해할 수 없는 나는

울면서 두려워하면서 한없이

한없이 여기 서 있다

 

우리들의 운명을 이끄는

뜨겁고 눈물겨운 은유를 찾아

여기 숲 속에 서서

 

-‘숲속에 서서’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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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이런 것도.

 

숲에 가보니 나무들은

제가끔 서 있더군

제가끔 서 있어도 나무들은

숲이었어

광화문 지하도를 지나면

숱한 사람들이 만나지만

왜 그들은 숲이 아닌가

이 메마른 땅을 외롭게 지나치며

낯선 그대와 만날 때

그대와 나는 왜

숲이 아닌가

 

-‘숲’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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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불어 숲! 그거 좋은 말인데

이제 ‘운동’ 성향의 격문에 대해서 사람들의 가슴이 뜨거워지지 않더라고.

 

{대선이 코앞에 다가왔는데 ‘공동체’라는 말 화두가 될까?

‘진보’의 허상을 봤기에 더욱...}

 

 

 

사시나무 아니더라도 다 떨더라고.

땀 식혀줄 만한 바람 불면 흔들리더라고.

흔들리는 게 어때서?

흔들리기에 꺾어지지 않는 거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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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 하나가 흔들린다

나무 하나가 흔들리면

나무 둘도 흔들린다

나무 둘이 흔들리면

나무 셋도 흔들린다

 

이렇게 이렇게

 

나무 하나의 꿈은

나무 둘의 꿈

나무 둘의 꿈은

나무 셋의 꿈

 

나무 하나가 고개를 젓는다

옆에서

나무 둘도 고개를 젓는다

옆에서

나무 셋도 고개를 젓는다

 

아무도 없다

아무도 없이

나무들이 흔들리고

고개를 젓는다

 

이렇게 이렇게

함께

 

-강은교, ‘숲’ (전문)-

 

 

다 좋은 시절의 시이다.

국가 대표나 지방 연고 팀의 대전에서 함성 지르는 것 말고

촛불시위 참가하고 인증샷 찍는 것 말고

정말 ‘함께, 그리고 나란히’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