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의 편지
부치지 않은 편지에도, 아니지
안 부친 편지라서 담긴 진정의 무게가 더 나갈 수도 있겠지만
所用으로 치자면
전달되지 않은 사랑은 다른 편 마음밭에서 싹트지 않을 것이다.
몸과 몸을 부비지 않더라도
端緖는 蟲媒이든지 風媒이든지 接觸으로 비롯하여 열매 맺게 될 것이다.
님이라는 글자에 점 하나가 붙으면 도로 남이 되는데
그냥 덤덤한 남은 아니고 어쩌다 마주 치면 눈에 불을 켜는 사이가 되기도 하더라.
그러니 벗이라고 하더라도, 임이라고 하더라도
벗에서 임으로 나아가지 않으려고 몇 번씩 마음을 다잡는 사이라고 하더라도
모든 관계에는 揮發性, 可燃性, 爆發性이 潛在하더라고.
까딱수에 확~ 펑~ 꽝~ 하는 거지.
그러면 왜 터지지 않는 거야?
內藏(built-in) 안전장치 때문이지.
그렇지만 안전핀, 빗장, 자물쇠, 비밀번호를 겹겹이 둘러치면?
擊發되지 않은 감정은 사랑으로 불타오르지 않더라고.
{물론 망할 수도 있겠지만} 터져서 불같이 일어나지 못하겠지.
무고한 희생이 생기지 않도록 곁을 물린 후라면...
나 터져봤음 좋겠다.
{이렇게 험하게 나갈 게 아니었는데... 나 지금 감동 먹고 激한 상태이거든.}
친구 00兄.
{월북인사도 아닌데 0을 두 개씩 쳐서 미안하네만... 사생활보호법에 따라 이리 처리함.}
내게 편지를 보냈는데
아 글쎄, 깨알 글씨 앞뒤로 꼬박 넉 장.
{잉, 우리 못 본 지 한 달인데 말이지, 고백하지 못한 무슨 사연이 남았기로?}
아 親筆 편지 대하기가 어디 흔한 일이겠어?
{시 몇 줄 블로그에 옮길 때에도 “나 이거 直打야!”라고 뽐내잖니.}
이메일, 그도 귀찮아-한 줄도 너무 길다?- 이모콘 몇 개 문자메시지로 보내는 세상에 말이지.
그 왜 양면괘지라고 그러던 것 기억나는지 모르겠네.
아니 그걸 어디서 구했기에 아직도 거기에 써야 한담?
봉투? 리발관 표지처럼 빨강, 파랑을 둘러치고 ‘VIA AIR MAIL’이라고 덧붙이지 않아도
전달되거든.
‘위대한 시대착오자’ 級은 아니고
그냥 살같이 빠른 흐름에 떠내려가지 않겠다는 거부의 몸짓인 게야.
이 친구는 동창회 총무로 십년 가까이 수고하시는 동안
잘난 동기들이라서 학술원 회원을 비롯한 학자/ 교육자, 정치인, 법조인, 재계인사 등 분야별로 여럿인데
Star parade에 끼지 못하는 변방의 왕따까지 그리 챙겨주시는지
난 알 수 없도다!
늘 먼저 안부 묻고
만나면 식사 마치기도 전에 번번이 화장실 간다고 일어나 계산대로 가곤 하셨네.
이름 없는 여인이라서 그냥 金氏로만 전해지는 부인이 ‘相思’라는 시를 남겼는데
向來消息問何如 저번 소식에 안부를 물어오시므로
一夜相思鬢欲華 밤새도록 그리움에 귀밑머리 희어집니다.
獨倚雕欄眠不得 난간에 홀로 기대어 잠 못 이루는 동안
隔簾疎竹雨聲多 발 너머 성긴 대밭에 빗소리만 늘어납니다.
제 맘이 꼭 그렇습니다.
마침 서울엔 모처럼 기다리던 비가 내리고 있다지요?
오래 전 글 ‘設苑’에 그런 말이 있지요.
“花香千里行 人德萬年薰”라고.
만년이 갈지 어찌 알랴마는
만리 떨어진 곳까지 그대의 따뜻함이 전달되어
제 맘이 사뭇... 뭐랄까
더위 먹은 사람을 시원케 해주셨습니다.
*음악은 Emily Dickinson이 쓴 시 'If I Can',
"만약 내가 한 사람의 가슴이 무너짐을 멈추게 할 수 있다면, 나 헛되이 사는 것은 아니리"라는 가사에
Bill Douglas가 곡을 붙였지요, 'A Place Called Morning'이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