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 3
나무는 꽃 피지 않았을 때도
나무는 열매 달지 않았을 때도
나무는 움트지 않을 때도
나무는 아기 손톱만한 잎을 점묘로 찍지 않을 때도
나무는 진녹색 물결이 일렁이듯 흔들리지 않을 때도
나무는 야단스러운 빛깔의 속옷으로 갈아입지 않았을 때도
나무는 뭘 전혀 걸치지 않았을 때도
나무는 아름답다.
나무는 살아 늠름하게 서있을 때뿐만 아니고
베어 쓰러지고 마른 가지가 토막 난 뒤에도 좋다.
‘좋다’-to be good-는 건 착하다, 아름답다, 용도에 적합하다, 튼튼하다, 고장이 안 난다, 맛있다...
여러 뜻을 지닌 채 사용된다.
좋은 것은 좋아하고-to be liked- 아끼거나 사랑하게 될까?
보통은 그럴 것이다.
좋지 않은 것은?
변태가 아닌 다음에야 좋아할 수는 없지.
그러니 그런 걸 사랑할 수는 없겠지?
꼭 그렇다 할 수 없는 것이
못난 자식, 모자라거나 악한 자식이라도 끝까지 사랑하기도 하니까.
좋지 않은데도 사랑한다?
사랑받는 것은 좋게 되더라고.
사랑은 존귀하게 여김이니까.
사랑은 의미와 가치의 창조와 재창조이니까.
“덜 귀히 여기는 그것들을 더욱 귀한 것들로 입혀주며...
부족한 지체에게 존귀를 더하사” (고전 12:22-24)
좋은 것이 좋을 뿐만 아니라
존재하는 모든 것들(萬有)은 다 좋다.
악은 소극적으로는 선의 결핍이고 적극적으로는 선을 적대하는 것인데
악도 좋다?
그건 선의 반대도 선이라는 모순.
그렇게 형식논리로 따질 것이 아닌 게
존재하는 것은 가치이고
가치는 도구적으로(instrumental)으로라기보다 내재적으로(intrinsical) 선하거든.
좋지 않은 것조차 좋게 쓰임 받게 되면
그게 좋은 것 아닌가?
합력하여 선을 이룬다는 말씀도 있고.
나무 얘기로 시작했는데 한참 헤맸네.
요즘 블로그에 더러 자귀나무 사진이 뜨던데...
그게 정원수로는 좀 그래.
멀리서는 빛깔도 곱고 해서 다가와 보면 꽃이 제물낚시(fly) 같더라고.
수형(樹形)도 그렇고.
목질(木質)이 약해서 강풍에 쉬이 부러지기에 집을 상하게 할 수도 있고.
그러니 정원수로는 적절한 게 아니겠네?
{왜 버드나무는 벌레가 꾀고 잎이 떨어져 지저분할 뿐만 아니라
부녀자가 바람난다는 검증되지 않은 속설로 뜨락에 들이지 않잖아.}
그래도 집 앞에 심긴 자귀나무 더러 보이더라.
다른 이름이 합환목(合歡木, 有情樹, 野合樹)이라나, 부부 금슬을 좋게 한다는 이유로.
이런저런 약재로도 쓰이거든.
해서 얘긴데
첫인상으로 단정해버릴 것도 아니고
저 싫다고 남도 싫어하는 게 아니니까
뭘 두고 흉보지 말자고.
쉿, 들을라
말 못한다고 듣지도 못하는 건 아니니 나무에게도 언짢은 말 하지 마.
세상에 몹쓸 건 없어.
팔방미인이라고 다 좋지도 않고
열두 가지 재주에 저녁거리 없더라.
한 가지라도 잘하면 됐다.
쓸모없는 것조차 마음에 두면 제 새끼 같고 임 같던데 뭘.
됐다.
나무는 다 좋고
어느 때나 괜찮다.
{가물거나 힘든 해에는 나이테가 진해질 터.}
* 한보리 집에서 공개음원 퍼온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