흰 구름 너머
‘雲山’이라는 호를 지니셨지만 ‘著者 識’에서나 쓰실까 즐겨 사용하시지 않았고
왜 그리 지으셨냐고 여쭌 적이 없다.
내가 어렸을 적에, 그러니 선친께서 사십대 중반이나 되셨을까
애창곡인 “괴로운 인생길 가는 몸이 편안히 쉬일 곳 아주 없네”를
가정예배를 드릴 때마다 온가족이 함께 불러야 하는 괴로움을 겪던 나는
따라 부르는 시늉을 하면서 장판의 때나 손가락으로 지우다가 고개를 치켜들었다.
“어린 자식들에게 ‘괴로운 인생길’ 같은 노래, 그건 하나님 찬양도 아니죠, 왜 그런 걸...”
불의의 일격을 당하시고 {아니, 이놈이 뭘 잘못 먹었나?} 어지러우셨을 게다.
말이야 바른 말이지 뭐, 화내실 수도 없고...
“오늘 그만 하자.” 그래서 해산.
5.16-쿠데타 아니라고?- 나던 해에 있었던 일.
중학교를 졸업하는 날 어떤 분-친구의 아버지로 당시로는 갑부 급-이 거금을 하사하셨다.
몇 달 전 사건 후로 죄송함도 있고 해서 그 돈으로 책을 사서 드렸다.
사상계 정기구독 신청, 함석헌 저 ‘뜻으로 본 한국 역사’, 아 내 몫으로는 ‘원예전서’
{얘기가 이렇게 나오는 건 고 장준하 선생의 죽어서도 증언한다는 소식 때문.
중학생이었던 내게도 사상계가 애독서이었다.}
아 그 노래 말이지, “산 너머 눈보라 재우쳐 불어도 돌아갈 내 고향 하늘나라~”
“광야에 찬바람 불더라도 앞으로 남은 길 멀지 않네~”
찬송가 같지는 않지만, 그 정서는 굳이 크리스천 아니라도 공유할 만한데
보자, 천상병은 ‘歸天’이라 하지 않았던가,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응, 언젯적 분이셔, 혜초 스님은 나그네의 죽음을 두고 “孰知鄕國路 空見白雲歸”
누가 고향 가는 길을 알꼬, 흰 구름 지나감만 하염없이 바라보네.
또 그런 詩句도 남기셨다.
月夜瞻鄕路 浮雲颯颯歸
달밤에 고향 가는 길 어딜까 바라보는데 뜬구름만 휙휙 지나가누나.
몇 번 얘기하지만, 여기선 볼 만한 게 흰 구름밖에 없다.
헤르만 헤세는 흰 구름을 두고 失鄕民에게 누이이고 천사라고 했던가.
Weisse Wolken...
Ich liebe die Weissen, Losen
Wie Sone, Meer und Wind,
Weil sie der Heimatlosen
Schwestern und Engel sind.
구름, 그게 멀리서 보기는 좋은데, 구름 속에 들어가게 되면?
“운무 더불고 금강에 살으리랏다”라지만
날 안 좋은 날 높은 산에서 운무를 만났을 때에 실족하지 않고 살아 내려와서
“그거 무섭더라고... 죽는 줄 알았어”로 무용담 하나 느는 셈인데
{무섭다기보다 신체를 떠난 영혼이 은회색으로 찬 공간을 유영하는 기분? (아직 안 해봤지만)}
에이, 더불고 살기까지야 어디...
{‘더불어’의 꼴로 보통 쓰이긴 하지만, “한데 섞여 어우러지다”라는 뜻의 동사인데
그 말 아는 이 없다고 ‘데리고’로 바꿔야 하는지?}
구름과 안개는 의심, 걱정, 탐욕, 무지를 나타내기도 하니까
아슬아슬함을 즐긴다고 해도 거기서는 벗어나야지.
중턱에 구름을 두르기도 하지만 봉우리는 구름 뚫고 솟아 보여줘야지.
{그런 의미에서 Mt. Rainier는 참말로 물건이여이~ㅇ}
性徹 스님의 悟道頌이 그렇게 맺던가?
“청산은 예대로 흰 구름 속에 섰네(靑山依舊白雲中).”
예전 같지 않아 한국 떠났다고 해서 소식 모를 것도 아니고
한국 식품? 못 구해 먹을 건 없다.
떠나온 지 100일 좀 지났는가
사는 환경으로야 여기가 더 나은 셈인데
구름 바라보니 건너편으로 가고 싶다.
{떠나지 않은 사람들이라고 고향에서 사는 걸까?}
이제 (어느) 교회에 속하기는 좀 그렇지만... 말씀은 살아 있으니까...
또 땅에서는 외국인과 나그네로라 증거하였으니
이같이 말하는 자들은 본향 찾는 것을 나타냄이라
저희가 나온바 본향을 생각하였더면 돌아갈 기회가 있었으려니와
저희가 이제는 더 나은 본향을 사모하니 곧 하늘에 있는 것이라
-히 11:13~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