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받음
백일 지난 제 아기를 보며 이런저런 소망을 얘기하는 사위를 보니 “오동나무 씨만 보고도 춤춘다”는 말이 생각난다. 한참 떠들다가 머쓱해졌는지 듣고만 있는 내게 “아버님께서 00이에게 바라시는 건 뭔지...”로 물어온다. 그리 말할 건 아니지만, 그러니 그리 말 안 했지만, “제 복대로 살겠지, 할아버지가 바라는 대로? 그냥 앞가림하며 가까운 이들에게 폐 안 끼치며 살면 됐네.”라는 마음. 개인적으로 못나서는 아니고 세상이 그러니 그리 되었겠지만, 부모에게 얹혀살며 경제적으로 독립하지 못하거나 출가도 하지 못한 ‘늙어버린’ 청춘이 좀 많아야지.
얼마 전에 아들들이 다녀갔다. 가기 전에 절한다고 그래서 받았다만, 세뱃돈 나갔다. “앞으로 장가가고-언제?- 애들 낳아 데리고 오거든, 네 자식들에게 줄 할아버지 세뱃돈은 미리 내게 맡겨두어야 한다. 알간?” “알았습...” {알긴 뭘 알겠냐만.}
-‘안갚음’이 뭔지 아오?
-‘앙갚음’ 아니고? 아니니까, 물은 거겠네.
-까마귀 새끼가 자라서 늙은 어미에게 먹이를 물어다준다는 뜻이오. 한자로는 ‘反哺’라고 하고.
-그거 좋은 말이네.
-그럼 ‘안받음’은?
-안갚음해도 안 받겠다는 뜻은 아니겠고...
-그렇게 ‘아니겠고’로 대답하지 말고... 안갚음을 받는 일이 안받음이라오.
-그러고 살면 좋겠네.
자식 여럿이면 이쪽에서 받아 저쪽으로 흘려보낼 수도 있을 게다. 안갚음하는 자식이 적어도 하나는 있어야겠네. 자랄 때 무슨 섭섭한 일이 있었다고 앙갚음하는 자식이 없지 않은 세상에 딱히 뭘 받겠다는 게 아니라 말로 하는 ‘Ode to my father’-영화 ‘국제시장’의 영어 제목-라도 들어봤으면 하는 baby boomer 낀세대의 늙은 아버지들. “아니 뭐 이런 걸 들고 오냐? 너희들 힘들게 사는 줄 아는데...” 그러면서 받는 안받음. “허허, 녀석들 참...” 그런 설들 맞으시기를.
자식들-그만하면 됐지-의 안갚음을 기대하는 게 아니고
채색옷을 지어 입히셨던 부모님께 뭘 보여드린 게 없었거든, 해서 이 아침에...
Dolly Parton이 먼저 불렀던가, 여기서는 Eva Cassidy의 노래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