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isconsin에서 1
쪽빛 아니어도 저만하면 그래도 너무 푸른 하늘이다.
심심하게 덤덤하게 그래도 미안함을 조금은 드러낸 채 바라보기에는
그저 그만한 하늘빛이 낫지 않은가, 너무 눈부시면 아예 쳐다보지도 않을 테니까.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 없기를? 애초에 그런 사람 아니었지만
가을이 되면 좀 부끄럽기는 하지. 여름의 낭비와 잘나가던 시절의 wantonness가.
그러고도 미련은 많고 염치는 없잖니.
비오는 밤 맷돌질, 달 밝은 밤 방망이 소리
여기 미국이어서가 아니고, 어디서라도 모터가 없던 시절에나 들을 수 있었겠는데
자겠다고 누웠다가 이명(耳鳴)처럼 들리는 소리 있어
일어나 서성거리게 되더라고.
후회가 없지는 않지만
‘그저 그런’으로 ‘그런’을 깎아내릴 건 없고
‘그런’은 “그렇게 개성과 고유의 역사를 지닌”이라는 뜻이니까
나름 한 작품이고 한 삶이었으니 I did it my way~♪로.
뻔뻔하게 나아가기로 맘먹었는데도 달아난 잠이 다시 오지 않는다?
그럼 어딜 다녀와야지.
그저 블로그 댓글로 인사 나눈 생면부지가 부른다고 갔다.
그야 친구와 배필이라도 만나기 전에는 다 모르는 사람들이었지.
소월이 그랬네, “첫날에 길동무 만나기 쉬운가 가다가 만나서 길동무 되지요.”
{親舊는 “오래도록 친하게 사귀어 온 사람”이니까 ‘새 친구’라는 말은 그렇고
벗이라면 “마음이 서로 통하여 가깝게 사귀는 사람”이니 ‘새 벗’이랄 수는 있겠네.
내외가 극진히 대접해서 빚을 많이 졌다.}
Wisconsin, 미국 중부는 남쪽이든 북쪽이든 동부나 서부처럼 짜릿한 맛과 뛰어난 멋은 없지만...
오랜만에 보는 오대호 풍경, 그리고 평지를 채운 활엽수와 옥수수밭에 마음이 커졌다.
포스터를 보고서 “하, 밀워키를 지나가다가 렘브란트를 만나다니” 반가운 마음으로 들어갔더니
기획전시는 10월 12일부터란다. {입장료 내기 전에 알게 되어 로비에서 차나 마시고...}
주차장조차 아주 괜찮네?
미국에서는 어디 뭘 보러 가자고 하면 일단 비행기를 타고 몇 시간 가서 목적지까지는
또 몇 시간을 차로 가야 하는데, 밀워키에서 Door County까지도 네 시간은 걸린다.
삼면이 Lake Michigan으로 둘러싸인 반도에는 도립공원이 다섯 개 있고 만, 섬, 등대 등이 펼쳐지며
Scandinavian, Belgian, Icelandic 전통을 나타내는 작은 마을들이 있다.
초여름에는 체리, 가을에는 사과-미국에서 Fuji에 비길 수 있는 맛은 이곳 산물 Honey crispy apple 정도?-가 나고
생계형 담수호 어부들도 제법 여럿 있다고.
평균 5 lbs 정도 크기의 Michigan white fish를 사람 당 하루에 50마리 정도 잡는데
한 마리로 3인분 접시를 만들고 감자 곁들여 일인당 16불을 받더라.
이 아저씨 생선 삶는 일을 29년 했다는데, 나이 사십으로 치면 11살부터?
한국에서 좋아하는 자작나무 보자면 어디로들 가시는가?
가늘고 긴 다리 드러낼 정도 되면 ‘여신 강림’이라고 하던데-여신 많다, 그지?-
딱 그 정도 굵기의 나무들이 힘겹게 서있지 않든?
하긴 자작나무는 약하니까, 잘 썩고 부러지고 상처투성이이니 아름드리로 자라지는 않더라고.
다른 나무라고 다친 자국 없으랴, 아니 살아있는 모든 것들은 아픈 채로 사는 거니까.
단단한 나무는 딱따구리가 더 좋아하고, 벼락에는 눈이 없어 골라 치지 않더라고
숲에도 길이 있다.
그야 두 말하면 숨차네, 공중에도 바다에도, 땅속에도 길이 있는 걸.
산다는 건 길 따라 걷기.
길 없는 델 갈 수 있겠어? {길 내기도 하지만, 그러며 길로 가는 거지.}
열심히 아니면 대충? 그런 게 없고, 빠르든 늦든 그것도 제 길.
나무들은 비탈에 서고 걸터앉은 이는 벼랑 끝 전술? 그런 게 어딨어?
여울가녁으로 밀려날 때도 있겠지만 낭떠러지에서 재미 보며 살 건 아니니까.
‘Im Abendrot’를 흥얼거리며 바닷가에서 거닌 시간이 길어 저녁식사가 늦어졌고
어둔 길에 비까지 쏟아져 긴 운전구간이 좀 그랬지만 잘 돌아왔다.
*음악은 Matthias Goerne가 부르는 Schubert, Nahe des Geliebten, D. 16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