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가는 길에 콩밭에서
일몰 때문에 천황산 사자평까지 가지 못하고 하산했는데
뭐 꼭 억새 벌을 봐야겠다는 건 아닌데도 다음날 어떻게 경주 무장산으로 발길이 닿았다.
무리에 섞여 오와 열을 맞춰 행진하는 게 싫다면 그 쪽으로 가도 좋겠다.
칼과 창을 쳐서 괭이와 보습을 만들겠다는 뜻이었을까
무열왕이 투구와 무기를 거두어 묻었다고 해서 무장(鍪藏)산이라고 했단다.
“興亡이 山中에도 있다 하니”, 또 “滿月臺도 秋草로다”라는 노래 있잖아
그렇게 寺址라고 불리는 터에 삼층 석탑이 있고
碑身(阿彌陀佛造像事蹟碑)은 사라졌고 螭首(이수)와 龜趺(귀부)가 남아있다.
투구 묻은 곳에서 투구꽃 피네
소개하고 관심을 높인 건 좋았는데, 그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인가 때문에
사람들이 더 많이 찾은 만큼 훼손도 더욱 심해졌을 거라.
그 조용한 골짜기에도 주말에는 사람들이 미어터지고
민가에 들러 “라면 하나 끓여주시면 넉넉히 쳐 드리겠습니다”라는 사람들이 늘다보니
미나리꽝 많은 데라서 미나리전과 삼겹살 파는 비닐하우스들도 몇 개 생겼다.
혼자만 누릴 수는 없는 거니까 오는 사람들 막을 것도 아니고
기회 되면 같이 가자고.
돌아오는 길, 논밭 가운데 兵營과 토치카의 殘滓(잔재)가 보인다.
일대는 포항, 안강 전투의 현장이니까...
‘UN 만세’라는 글자가 지워지지 않았구나.
{그 시절 방한모에 UN이나 OK를 수놓아 유엔모자라고 부르기도 했지.}
아휴, 저 콩밭 빛깔 좀 봐.
프로방스의 밀밭 빛깔보다, 고흐가 즐겨 떠온 노랑 물보다 더 곱지 않던?
“초록이 지쳐 단풍 드는데”로 멋부릴 것 없지만
풀빛에서 흙빛으로 돌아가는 중에 잠깐 들른 흐린 노랑
그게 꼭 울리지 않았는데 우는 情人을 바라보는 마음빛이랄지...
농부 시인이라는 박형진, 콩 농사지으니까 <콩밭에서>라는 시집 내었겠는데
건 또 뭐냐, ‘꼭 한 번은’이라는 시. {검열에 걸릴까 올리지 않는다.}
‘콩밭에 비추거라’라는 시도 있다.
달아,
솟아 콩밭에 비추거라, 너마저
뜨지 않는 밤 너마저
뜨지 않는 밤
노래 부르네 나는 노래하네
콩밭에 두고 가는 내일의 고달픔을
풀섶에 묻고 가는 안타까운
내 사랑을
하늘이 저렇게 시퍼러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