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sa Verde (풀빛 테이블)
콜로라도 남쪽, 뉴멕시코와 경계 가까이에 메사 베르데 국립공원이 있다.
물이 없는 곳이다.
가까이는 콜로라도 강이, 좀 떨어져서는 리오그란데가 흐르지만
그 ‘가까이’라는 게 서울-대전 거리쯤, 리오그란데까지는 부산-해주쯤인데, 가깝다?
강가라고 해도 풀도 자라지 않는 황토와 적토의 언덕과 골짜기이더라고.
왜 그런 데가 삶의 터전이 되었을까?
그들이 자리 잡을 무렵에는 지금처럼 비가 오지 않는 지역이 아니었을 텐데
13세기 초에 30여 년간 기근이 계속되면서 그들은 떠날 수밖에 없었다.
푸에블로 인디언(the Puebloan), 그들 자신을 부르는 이름은 아니고
Pueblo는 ‘촌락’이라는 뜻, 스페인계 이주자들이 마을을 이루어 사는 토착민을 가리키는 말이었다.
메마른데다가 바람이 심하니 걸핏하면 대형 들불로 번지기 쉽고
경우에 따라서는 남한만한 땅이 한번 타버리면 자연복원력에 의해 푸름을 되찾기가 여간 오래 걸려야 말이지.
그들은 거기서 농사짓고, 사냥하고, 바구니와 토기를 만들면서 700여 년을 살았다.
옥수수? 인디언들이 경작하던 것을 16세기에 정복자들이 가져가 세계로 퍼지게 되었던 것.
그곳에 있는 허름한 박물관에는 적어도 1,400년은 되었을 거라는 옥수수 이삭이 진열되어 있다.
그들은 벼랑에 굴을 뚫거나 흙벽돌로 벽을 쌓아 거처를 삼았다.
고원(1,800-2,683m)에서 혹독한 추위와 더위를 덜고 방어에 유리했기 때문이리라.
개인주택 아래에는 키바라는 공동체 생활의 중심이 되는 모임 터가 있었다.
Mesa Verde는 알려진 후 도굴과 훼손이 극심했으나 1906년에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었고
지금은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지정, 보존되며
4,000개가 넘는 고고학적 유적과 600여개의 벼랑주택 터가 산재한다.
경주 남산에 가서 밟히는 게 모두 유적 같아 어디다 발을 디뎌야 할지 몰라 당황한 적이 있는데
워낙 지역이 넓기도 하고, 금관을 발굴할 만한 문명이 아니었다고 치자.
그래도 이주민들이 유럽에서 가져온 전통 보존과 비교하자면
북미 원주민의 전통과 문화유산의 보전 노력은 미흡한 감이 없지 않다.
그리고 부치지 않을 사족인 줄 알지만...
문화적 사대주의와 열등감에 빠질 것도 아니지만 반만년 유구한 역사와 찬란한 문화를 너무 떠들어댈 것도 없지 싶다.
어느 민족, 어느 때 어느 지역에 거주했던 부족에게도 다 집단기억으로 남지 않은 것들조차
가늠케 하는 증거들이 숱하니.
600년경에 그곳으로 와서 700여년을 정주했다가 떠난 이들은 어떻게 되었을까?
그 지역을 the Four Corners라고 부른 것은 유타, 콜로라도, 뉴멕시코, 애리조나 4주가 접경을 이루는 곳이기 때문인데
그들은 각 주에 흩어진 부족들, Navajo, Ute, Hopi, Zuni, Laos 등의 원조였던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