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hiprock 딸네 집
“저희 사는 데 한번 다녀가시지요.”라고 해서 나선 길이었다.
사는 데로는 안 가고 공항에서 pickup해서는 콜로라도에서 사흘을 돌아다니다가
막상 딸네 집에 가서는 오후 늦게 도착, 하룻밤 묵고 이른 아침에 떠나왔다.
그게... 볼 것 없고 할 것 없고 불편한 데라서 그랬을 것이다.
콜로라도와의 주 경계에서 한 시간도 채 안 되는 거리인데 영 다르네.
뉴멕시코의 북단에 있는 Shiprock은 어쩌면 그리도 황량한지?
아무렴 인디언 보호구역이 아름다운 경치에 살기 좋은 곳에 있을까?
Shiprock이라는 이름은 19세기에 유명했던 돛배(帆船) 모양 같다 해서 붙인 이름이지만
나바호(Navajos) 인디언은 ‘TseBitai(날개달린 바위)’라고 부른다.
{딸은 고양이 같이 생겼다고 그러더라마는.}
이런저런 신화와 전설이 얽힌 그곳이 원주민에게는 성지로 존숭(尊崇)되기에
암벽 타는 이들에게는 목전의 유혹이겠으나 등반 자체가 금지되어 있다.
얼마나 크냐고? 차지한 면적으로 치자면 19 x 32 km, 해발 2,188 m, 도드라진 높이가 482 m.
우리에게야 멀리서 보고 “아!”하는 것일 뿐, 그것 빼놓고 보면 황야이다.
딸은 의사의 집이라기에는 너무 후지다고나 할까, 그런 관사에 살고 있다.
앞뜰 뒤뜰 모래인데, 뜰에는 반짝이는 금모래빛? 그건 아니고,
철 지난 해수욕장에 늘어선 횟집 중에 장사 걷지 않은 집 바닥 같은.
정부 소유라 불편하다고 입주자가 개량하지도 못한다.
채소 좀 길러먹겠다고 텃밭을 만들면 물값을 감당할 수 없고
정원수를 심는 것도 허락을 받아야 한다.
음주운전으로 인한 사고가 많아서 밤에는 아예 나가지 않는 게 상책
병원 직원들 중에 단독세대가 사는 아파트 형
왜 그런 데 가서 그렇게 살아야 하는지?
고모들은 ‘의료선교’니 해가며 갸륵한 희생으로 보지만
본인은 정작 편한 데 찾아왔고 평생 있을 곳은 아니니 경력 관리 정도로 여긴다는 표정.
이미도 레소토, 북인도 등에서 AIDS와 한센병 환자들을 치료한 경험이 있는데
유명 병원에서 몇 해 있다 보니 상업적 동기와 관료적인 행정체계가 싫었던가 보다.
현재 일하는 병원 자체는 크다. 대상이 희망 없이 살아가는 토착인일 뿐.
딸이 사는 집
새 발자국이 찍히는 앞뜰
“볼 것 없고 얻을 것 없는데 맨날 여기 와서 살아요”라는 뒷뜰의 비둘기 두 마리
사위는 그곳에서 아직 ‘직업’을 얻지는 않았고 제빵과 좋은 솜씨로 만든 음식을 동네에 돌리고
인터넷도 되지 않는 곳에 유배 온 수련의들을 불러다가 대접한다.
그래서 돌아오는 게 있냐고? 집에서 기른 채소 같은 것.
미국에서는 결혼식에 축의금을 들고 가지 않는 대신에 그릇과 살림 기구 등을 선물하는데
그 많은 것들 뜯지도 않았는지, 가지고 있기나 한지 친정에서 들고 온 짝맞지 않는 것들 내놓고 쓴다.
더 길어져봤자 자식자랑 반푼이 소리나 듣기 십상이니 그만하련다.
부모로서 딸자식 사는 모습 보고 안쓰러워서 하는 말로 여기시게.
{아울러 해외, 아니더라도 국내 소외지역에서 씩씩하게 일하는 젊은이들의 부모님들께
“저희들은 좋다는데요 뭘. 그럼 됐지요.” 그런 인사도 나누고 싶고.}
옆집 사는 남 (무명)작가, 여 의사 부부가 에티오피아에서 입양한 딸
아버지는 매일 아침 이 아이를 유모차에 태워 밀며 8 km를 뛴다.
입구에 붙인 옥수수 장식에게 인사하고 떠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