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그만 헤어집시다

 

 

이맘때면 온산이 불타듯 붉겠네.

언젯적 얘기? 잎들 떨어져 헐벗은 가지들이 힘겹게 하늘을 받치고 있을 거라.

더러 달린 잎들에 서리 내리면?

곧잘 인용되는 杜牧의 시구 있지, 霜葉紅於二月花 서리 앉은 이파리 봄꽃보다 붉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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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엽 치우다가 과로사한 환경미화원도 있더라고.

쓸고 나서 돌아오면 또 날리고, 쌓이고...

시지프스까지 들먹일 건 아니지만, 애씀의 덧없음이랄까

무의미한 반복 같은데 하긴 해야 하는 일들.

{“쓸어 무삼하리오”로 넘어갈 수 없더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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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 먹고 난 자리는 빨리 치워야겠지만

떨어진 잎들, 꽃들 좀 놔두면 안 될까?

 

 

魯迅은 ‘朝花夕拾’이라고 했지.

아침에 떨어진 꽃 바로 쓸어내지 않고 저녁때 치운다는 얘기겠지.

{그 말만 떼어내서는 아침에 핀 꽃을 뒀다가 저녁에 꺾어 들인다는 억지도 가능하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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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발력, 부지런함, 빠릿빠릿함으로 신속 대처하는 능력이 개인과 국가의 경쟁력?

“어영부영하다가 내 이럴 줄 알았다”라는 게 무슨 실패자의 탄식은 아니잖아?

 

“될 대로 되도록 내버려두자”고 목소리 높일 것 없고

{내버려두지 않는다고 될 대로 되지 않는 것도 아니더라.}

일 만들지 않으면 돼.

 

 

올림픽에서 메달 딴 어떤 선수를 두고 그런 제목을 뽑았더라고.

게으른 천재 늦게 꽃 피다

후와, 가슴 뛰는 것 있지.

그 꼴 못 봐줘서 한마디 하더라고.

게으른? 맞고. 천재? 아니고. 늦게 펴? Never happen.

{주제 파악을 못해서가 아니고 웃기려고 유희하는 자뻑 모드에 웃지 않으면 머쓱, 썰렁.}

 

이봐, 可能態에는 actualized possibility와 non-actualized possibility가 있다는 말씀.

다 부처님 아니더라도 나름 소질은 있는 거라고(一切衆生悉有佛性).

나 천재? 맞고. 게으른? 것도 맞고. {수행을 안 하니까}  피긴 필 건가? 건 모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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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lliam Butler Yeats의 ‘The Falling of the Leaves’라는 시

 

Autumn is over the long leaves that love us,

And over the mice in the barley sheaves;

Yellow the leaves of the rowan above us,

And yellow the wet wild-strawberry leaves.

 

The hour of the waning of love has beset us,

And weary and worn are our sad souls now;

Let us part, ere the season of passion forget us,

With a kiss and a tear on thy drooping brow.

 

 

{꼭 맘에 드는 건 아니지만, 고 장영희 님의 번역 그대로 인용.}

 

낙엽은 떨어지고

 

가을이 우리를 사랑하는 기다란 잎새 위에,

보릿단 속 생쥐 위에도 머뭅니다.

머리 위 마가목 잎이 노랗게 물들고

이슬 젖은 산딸기 잎새도 노랗습니다.

 

사랑이 이울어가는 시간이 다가왔습니다.

슬픈 우리 영혼은 지금 피곤하고 지쳐 있습니다.

헤어집시다, 정열의 계절이 우리를 잊기 전에

그대 숙인 이마에 입맞춤과 눈물을 남기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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꼿꼿할 순 없으니 고개 숙였겠네.

퍼붓는 건 아니고, 한 번의 키스와 한 방울 눈물로.

{나쁜 시키~ 그렇게 쉽게?

요즘 세상에 ‘날카로운 첫 키스의 추억’ 같은 게 있으련마는...

어쩌겠는가, 펑펑도 소용없고, 결국 하룻밤, 딱 한번으로 요약되고 수렴하더라고.}

 

예이츠가 젊었을 적, 뭘 모르는 때 쓴 거지.

사랑은 아주 진한 것, 그러니 오래 가지 못하고 시드는 것, 차마 볼 수 없어 헤어져야 함,

떠날 때는 쿨하게!

그런 것 아니거든.

 

나이 들어 보니까 시인의 영감에 포함되지 않은 것까지 보이더라.

그렇구나, 곱게 늙고, 때 되면 구걸하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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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하, 꽃이 지기로서니 바람을 탓하랴.

때 되어 잎 떨어질 때 바람 불면 좋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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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그만 헤어집시다? {같잖게 미끼 한번 썼네.}

언제 같이 있었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