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빛

 

“초록이 지쳐 단풍드는데” 라는 말, 그거 뭘 좀 아는 사람 얘기.

잎파랑치가 할 일 다 하고는 기진맥진하여 “그럼 난 이만...”으로 사그라질 때

안토시아닌, 카로티노이드, 타닌 등 잠복요소가 준동(蠢動)하면서

잎들은 붉거나 노랗거나 갈색으로 변색(變色)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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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 선선해지면 “이맘때 토론토에는...”으로 고운 단풍을 떠올리며

이민 초기에 Don Valley Parkway를 따라 드라이브하거나

Sunnybrook Park나 High Park로 가을나들이 나가던 일을 회상했다.

지난 몇 해 한국 나가 살면서 단풍 좋다는 데도 다녀봤지.

그러면서 미국 중남부, 아 이 댈러스에서는 가을 정취를 누릴 수 없다고 푸념했다.

그런데... 올가을 여기,,, 좋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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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퇴 후 첫 해, 딱 뭘 할지 맘 잡지 못한 채 빈둥거림이 창피하지도 않은데

아 그냥 걸어 다니는 것도 괜찮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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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산홍엽(滿山紅葉)이니 그러는데, 여기는 벌겋지는 않아.

그래야 고울 것도 아니지 뭐.

가을빛은 가는 빛, 갈빛(褐色)인데, 노랑이 보태지면 은혜위에 은혜를 더함 같고

빨강이 아주 없지도 않고, 주황에 빨강을 더 섞은 노을빛 같은 게 그럴듯하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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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웃기는 게 걸핏하면 색깔론으로 몰고 가던 집단이 적색을 택했는데

맨 날 당하던 쪽에서는 정작 뭐라 그러지 않더라고.

에고, 밥맛 운동화 색깔이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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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여다보면 족보 있는 나무들도 많다.

한여름 뙤약볕 아래 힘들게 서있던 나무들이 ‘똥아저씨’ 같아 보였는데

알고 보니 그럴 듯한 출생배경으로 시작해서 곱게 늙어간 것들이더라고.

어려운 시절에 추레한 꼴 보였다고 그렇게 기억할 게 아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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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물녘 한가로이 걸으며 휘파람 부는 맛도 괜찮더라.

서산대사도 그러셨더만.

 

遠近秋光一樣奇 閒行長嘯夕陽時 滿山紅綠皆精彩 流水啼禽亦說詩 -‘賞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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