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racias a la vida

 

 

 

 

‘추수감사절’이란 말 쓰지 말자고 오래 전부터 목소리 높였어도 귀담아 듣는 이 없었다.

거둔 게 많아 넉넉한 마음이 되는 건 딱히 ‘종교적’ 감정도 아니잖아?

“비록 ~지라도”라야 제대로 감사하는 것일 터.

그러지 않았는가, “가지에 열매가 달리지 않고 밭에 소출이 없고 우리에 양과 소가 없어도

즐거워하고 기뻐하리라”고. {Cf. 하박국 3:17, 18 줄임, 의역}

“그대 있음에!”로 다 되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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헉! 우리 아파트에 무지개 꽂혔다.

이런 날 아기가 들어서야 하는데...

 

 

누구에게 감사하는 거지?

신자가 아니라면 은혜를 끼친 신적 존재를 인정하지 않을 것이고

조상님에게? 그것도 좀 그러네.

나라님이나 국가? 그게 무슨... 사극을 너무 많이 보는 것 아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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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ioleta Parra는 그냥 삶에 감사한다고 그랬다.

{Gracias a la vida. 문법으로는 어떻든지 뜻으로는, ‘삶에게’보다는 ‘삶을’이라 해야겠네.}

 

별 걸 다해본 여자, 먹고 살기 위해서이기도 하지만 재미있기도 해서?

그렇지, 예술은 재미있어 하는 거지 싫은 걸 억지로 하는 벌이는 아닐 터.

아픔과 슬픔을 잊으려고 노래하든지 손을 놀린 걸 두고 나중에 사람들이 좋다고 그러기도 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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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이란 다 그런 것, 새가 직선으로 날지 않듯 저도 의도하지 않았던,

그리고 워낙 그렇게 타고 난 사람들만 그렇지는 않을 거라, 무의미한 곡선의 숱한 궤적 말이지.

 

“왜 새가 노래한다고 그러지 않고 운다고 그러냐? 그거 잘못된 거 아냐?”라는 말

그거 잘못된 거다.

 

그 여자가 그러더라, “슬픔이 없는데 어떻게 노래가 나오냐?”고.

{영화 즐기는 사람이라면, ‘Violeta Parra Went to Heaven’이라는 것도 봤는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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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추석처럼 민족대이동이 있고 그렇지는 않지만 감사절 연휴라면 가족들이 모이는 때인데

딸이 동생들을 불러 같이 지냈다니 그건 됐고

터키 한 마리 잡으면 며칠 그것만 먹어도 다 처분할 수 없는데, 다행히 불러준 분이 있어 맛은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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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 일 없어 동네 걸어 다니며 둘러보니 어, 우리 사는 데도 괜찮네?

물이 귀한 지역이지만 사람들의 물 씀씀이는 헤프다.

군데군데 인공호수도 널려있고.

 

새들. 철새가 텃새가 돼버리고 식성도 빵부스러기나 칩으로 바뀐 건 그렇지만

그래도 어느 때 가도 볼 수 있으니 그건 좋다.

깃이 같은 새들끼리 모인다(Birds of a feather flock together)고 하더라.

그렇겠지. 편하니까.

생명이라면 먹이 더 얻으려는 다툼에서 벗어날 수 없는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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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금강하구에서 ‘세계철새축제’라는 걸 했다는데 이름이 웃기지도 않게 철새가 없더라는.

60만 마리나 찾아오던 가창오리가 올해는 이삼천 정도나 될까라는.

사람에게 좋으면 됐으니까 철새까지 챙길 건 아니지만, 과연 사람에게는 좋은 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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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이여, 고맙다. 내게 많은 것을 주었지.

그런데 왜 “탕!” 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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