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마음에 두신 소원(1)
너무 높이 날아서 떨어졌겠는가만
이카루스는 인류 최초의 비행사이었다. 실은 그의 아버지 다이달로스에게 공을 돌려야 하겠지만. 다이달로스는 미노스 왕의 미움을 사서 아들과 함께 탑에 갇히게 되었다. 그는 육로나 해로로 탈출할 길이 없으므로 공중을 이용하기로 했다. 그래서 날개를 만들었는데, 조그마한 깃털은 밀초로 붙이고, 큰 깃털은 실로 잡아매었다. 드디어 날 준비가 되었을 때에, 그는 아들에게 말했다. “이카루스야, 나는 네가 적당한 고도를 유지하기를 부탁한다. 너무 저공을 날면 습기가 날개를 무겁게 할 것이고, 너무 상공을 날면 태양의 열이 날개를 용해할 것이니까, 그저 내 곁으로만 따라오면 안전할 것이다.”
결과는? 이카루스는 제멋에 겨웠다고 할까, 좀 더 높이 올라갔는데, 그만 태양열이 밀초를 녹이는 바람에 깃털이 툭툭 떨어지면서 부력을 잃고 말았다. 모든 추락하는 것에는 날개가 있다?
너무 높이도 말고, 너무 낮게도 말고. 그것은 이상과 현실 사이에서 추락하지 않고 나아가기를 계속해야 하는 사람들의 처신과 행보를 가르쳐주는 듯 하다.
비행기의 시작
사람이 정말 날 수 있을까? 물론, 사람은 새처럼 날도록 지으심을 받지 않았다. 그래서 ‘날틀’을 이용하게 된 것이다. 동력 비행기를 발명한 사람은? 라이트 형제이다.
100년 전, 그러니까 1903년 12월 17일, 노스캐롤라이나 주 키티호크 해안 모래언덕에서 36세의 윌버 라이트와 32세의 오빌 라이트 형제는 바람이 아닌 동력으로 움직이는 비행기를 띄우는데 세계 최초로 성공했다. 얼마나 날았길래? 12초 동안 36미터를 날았다. “애개, 겨우 고것?”이라 할지 모르지만, 시작은 그랬다. “네 시작은 미약하였으나 네 나중은 심히 창대하리라”(욥 8:7)라는 말씀은 인간 욕심의 전말을 합리화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위대한 일의 시작은 하나도 위대해 보이지 않았다는 것, 하나님 하시는 일은 야단스럽게 시작되지 않는다는 뜻으로 받아야 할 것이다. 세계 각 나라를 한 지구촌으로 만든 움직임은 바로 12초 동안 36미터를 나는 첫 비행으로부터 시작되었다. 아니, 라이트 형제가 소년 시절에 하늘을 나는 꿈을 꾸면서 시작된 것이다.
남들이 생각해보지도 못할 때에
꿈으로 친다면 그 이전 사람들이라고 안 꿔봤을까? 그런데, 그것은 그야말로 ‘꿈’에 그쳤다. 그리고, 꿈은 “꿈 깨.”라는 말로 금방 부정되었다. 비전이 꿈과 다른 것들 중의 하나는 비전은 지속된다는 것이다.
한 사람의 비전에 대해서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생각할까? 비전을 공유하지 않는 사람들은 비웃거나 반대할 것이다. 라이트 형제의 아버지는 목사이었다. 그는 자식의 비전을 바벨탑을 쌓아 하늘에 오르려는 인간의 교만쯤으로 여겼던 것 같다. 그러면 이미 성공을 거둔 라이트 형제가 고향으로 돌아올 때에 그 동네 신문은 어떻게 보도했던가? ‘비행기’에 대해서는 일언반구도 없었다. “우리 고장 출신인데 자전거 사업으로 짭짤한 수입을 올리던 아무개가 방문한다”가 기사의 전문이었습니다. 알지 못하니까 말할 게 없었던 것이다.
비전과 소원을 품으면
모든 사람들의 삶은 어디에선가 끝이 난다. 소수의 사람만이 의도한 곳에서 그들의 삶을 매듭짓는다. 예전에 “어디서 무엇이 되어 만나랴”라는 작품이 있었지만, “어디서 무엇이 되어 마치랴”에 대해서 생각해보셨는지? 원했던 역할과 과업을 이루고 원하는 모습으로 마칠 수 있는 사람은 비전을 지닌 사람이다.
지닌 비전이 모두 성취되는 것은 아니다. 비전을 가진 사람은 모두 성공할까? ‘성공’을 어떻데 정의하느냐는 문제를 일단 접어놓고 말하자면, 꼭 성공하는 것은 아니다. 그렇지만, 비전은 우리 인생에 열정, 동기, 방향, 목표, 의미, 가치를 제공한다.
날마다 해야 하는 하찮은 일들, 밥벌이와 관계되어 반복되는 기계적인 작업, 하기 싫지만 할 수 없이 떠맡게 된 일들, 그런 것들이라도 일단 나의 비전과 연결된다면, 그런 모든 일들이 ‘의미’의 새 옷을 입고 매력적인 과업으로 다가오게 될 것이다. 허드렛일이 중요한 일로, 시시한 일들이 할 만한 일로, 정 하기 싫은 일들은 목표를 향하여 나아가는 통로쯤으로 여겨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