떨어짐

 

떨어짐은 잃음이 아니라 옮김이다.
있던 자리에서 있을 자리로.
특별히 슬플 이유도 없는 것이다.
꽃은 씨로, 잎은 거름으로.


급작스런 변화가 놀라울 뿐인데,
간만에 만나면 “몰라보게 달라졌네” 하지 않던가,
낙화가 별난 것도 아닌데,
그 metamorphosis의 속사(速寫)를 따라가지 못하는
우리 눈을 두고 마음이 야단치는 것이다.


지훈은 무얼 보았을까,
벚꽃, 목련?
동백일 것 같다.
    
하이얀 미닫이가
     우련 붉어라.
탐정이 아니니까,
귀촉도 울음 뒤에”를 단서로
모란? 할 것도 없고,
그냥 ‘꽃’으로 알아둬라.


     묻혀서 사는 이의
     고운 마음을


     아는 이 있을까
     저허하노니


     꽃이 지는 아침은
     울고 싶어라.


울어.


또 있지, 이형기라고.


     가야할 때가 언제인가를
     분명히 알고 가는 이의
     뒷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낯뜨겁다.
시인보다 두 배는 더 살았는데,
결별이 이룩하는 축복에 싸여”라 하지 못하니.


바람 불지 않아도 꽃잎은 떨어진다.
꽃이 지는 건 바람 탓이 아니고,
때가 되었기에,
피었다가 지는 게 자연의 이치이니까.


귀가 순할(耳順) 나이에
마음이 산란한 것을
"오늘 바람이 많이 불기에"라고
변명하면서
떨어진 도토리를 쓸어모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