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놀던 옛 동산에

나는 종로구 서린동에서 태어났다.  당시 인근에서는 화신백화점 다음에 제일 큰집이었다고 할만한 오층 집에서 낳았다.  그렇다고, 부자였다는 얘기는 아니다.  그 건물은 부친의 친구였던 일본인이 조선을 떠나기 전에 명의 이전해 준 것을 해방 후에 월남 학생 기숙사, 탁아소, 등으로 사용하던 것이었다.  

 

그런데, "당신의 고향은?"에 대답하자면, '경기도 광주군 남종면 분원리' 라는 쪽으로 마음이 향하게 된다.  거기서 초등학교를 나온 것도 아니다.  아, 아버님이 낳으시고 자라신 곳이다.  그래서 자주 찾게 된 곳이다.   사기가마--폼나게 말하자면, '백자도요'--가 있던 곳으로 사옹원의 분원(分院, branch)이라 하여 '분원리'라는 이름을 얻었다.

 

그 동네 앞 벌은 팔당댐으로 수몰되었고, 대형음식점들이 들어섰다고 한다.  어쨌든, 한국을 떠나기 전에 들려본 게 벌써 32년이 되었고, 그 후론 (변한 꼴이 보기 싫어서인가) 가보지 않았다.

 

그런데, 요즘 그곳이 자주 생각난다.  근처 지명들을 주워 담아본다.  제대로 기억하는지 모르겠다.  면사무소가 있던 분원리로 시작하여, 검철리, 우천리, 귀여리, 수청리, 도마, 족동, 배암(밸미), 웃말, 아랫말, 안골, 뒷골, 걸음, 가당골, 대추나무골, 잣나무골, 간옹골, 팔리골, 삼정골, 새청말래, 비석거리, 둥그재, 육당, 모랭이, 도링개, 도랑개, 괴내, 검다내, 소내, 성(승)림, 정주(지)꾸미, 괘기, 떡갈봉, 구터, 오리, 마재, 떠드랑산, 줄바위, 호랑이바위, 방죽논, 벌내,...  이런 것들을 기억한다고 알아달라는 것도 아니고, 그런 곳/것에 얽힌 얘기들을 듣고 나눌 만한 어른들을 모시지 못하니 안타깝다는 뜻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