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린 뭐 먹고사는데?
라이나 마리아 릴케가 파리에 체류하던 시절의 얘기입니다. 그 무렵 그는 매일 정오가 되면 젊은 여인과 짝이 되어 산책하였습니다. (불편하지 않을 정도의 거리만 유지한다면, 총명한 소녀에게 삶과 예술을 구술한다는 것은 괜찮겠지 뭐.) 초라한 노파가 그들이 지나쳐 가는 거리에서 구걸하고 있었습니다. 시인과 동행하던 여인은 그 노파에게 늘 동전을 주곤 했습니다. 릴케는 아무 것도 주지 않았습니다. 너무 무심하다 싶었던지 그 여인이 뭐라고 하자, 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리는 저 노파의 손에 무엇을 쥐어주기 보다는 마음으로 받을 선물을 줄 수 있어야 돼요.”
이튿날 릴케는 장미 한 송이를 들고 나타났습니다. 여인은 뛰는 가슴으로 마냥 기뻐했습니다. 그 둘 사이라는 게 문하생으로 들어와서 사숙하다가 연모하게 된, 그러나 정작 릴케의 태도는 모호했던 모양인데, “호, 드디어 장미를 들고 나오셔?”라고 지레 짐작했던 게지요. "떡 줄 놈은..." 뭐, 그런 말 있잖아요? 릴케는 그 장미를 거지 노파에게 주었습니다. 순간 감격한 노파는 릴케의 손에 키스를 퍼부었습니다. 그리고 그 노파는 그 자리를 떠났습니다. 실망한 여인은 뭐라 말을 하려다가 그만 두었지만, 말 안 하면 모를까, “거지 노파에게 장미가 필요한 걸까...”
한 열흘이나 보이지 않던 노파가 다시 그곳에 나타나 구걸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러자 여인이 물었습니다. “그 동안 저 할머니는 무엇을 먹고살았을까요?” 시인의 대답은 짧고 밭았습니다. “장미.”
물론 장미를 먹고 살 수는 없습니다. 장미 아니라 보석이라도 그것을 ‘먹을’ 수는 없습니다. 어느 무인도에 표류한 사람들이 몇 일 후 해안으로 밀려오는 상자를 발견했다지요. 먹이에 달려드는 맹수들처럼 굶주린 사람들이 다투어 그 상자를 열었겠지요. 앗, 그 상자는 보석으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실망한 사람들이 졸도했다는 얘기 아닙니까? 그런데요,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도 아니거든요. 사람은 사랑을 먹고삽니다. 육체에 음식이 필요하듯이 심령에는 사랑이 늘 공급되어야 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