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움과 그림
‘그리다’라는 동사는 여러 파생적인 의미를 제외한다면, (1) 보고 싶어 그리운 마음을 품는다던가 사랑의 정을 품고 생각한다는 뜻과, (2) 어떤 형상을 그와 같게 그림에 나타낸다는 뜻이다. 같은 어원에서, (1)의 명사형은 그리움이 되고, (2)는 그림이 된 것을 문법적으로 어떻게 설명할는지 모르겠지만, 그리움과 그림의 내적 연계랄까 그런 쪽으로 생각이 이어지는 것이 억지는 아닐 것 같다. 해서 얘긴데, 그리움과 그림은 고대철학에서 말하던 형상과 질료라고 하겠는지? 그리움 없이 그림은 생겨나지 않으며, 그림이 없으면 그리움을 담을 수 없다고.
드볼작의 9번 교향곡(‘신세계’) 이 악장의 동기랄까, 잉글리시 혼(?)으로 스며 나오는 듯한 멜로디에 가사를 붙여 만든 ‘그리운 고향(Going Home)’이라는 노래가 있다.
꿈속에 그려라 그리운 고향...
자, 거기서 ‘그려라’? 부자연스러운 번안 가사가 고착되고 보니, 이제 와서 고치자고 하기도 그렇겠다. 문법적으로 맞으면서 적절한 의미가 있다면, ‘그려라’는 (2)의 명령형(Picture! or, Draw!)이다. (‘그리워라’를 줄여서 ‘그려라’로 했다고 그러기도 무리이고.) 그러니까, 꿈속에서 그리운 고향의 요모조모--풍경과 추억--를 형상화한다는 얘기이리라.
말이 그러니까 그리움(慕)과 그림(畵)을 묶어보았지, 어떤 예술은 그리움 없이 가능하겠는가. 미술(美術)이란 말 그대로 ‘아름다움을 만들어내는 기술’이겠는데, 그게 어디 회화에만 적용되겠는가? 유용성과는 별도의 가치인 아름다움(美)을 추구하고 구현하는 기술과 작업과 과정은 다 미술이다. 음악, 문학, 등 다른 분야가 있으니까, 미술은 ‘fine art’로 제한하고 그런 추구들을 통칭하여 ‘예술(藝術)’이라 부르게 되었겠다. 그런데, 조형미술이라면 얼른 시각의 대상으로서의 ‘형상화’를 떠올릴 수 있지만, 시각적 이미지를 다루지 않는 예술 분야는 그리움의 체화(體化)를 드러내기가 더 곤란할 것 같다. 뭐, 그래도 시는 아무라도 쓸 수 있다고 많은 이들이 생각한다. (알타미라의 동굴 벽화보다 ‘노래’가 먼저 있었는지, 그런 것에 대해서는 잘 모른다.)
그리움은 어떻게 생겨나서 무엇으로 전개될까? ᄆ, ᄆ자로 끝나는 말은?
외로움, 서러움, 기다림, 목마름, 아림, 몸부림, 부끄럼, 시달림, 괴로움, 해서 “음~”하는 신음.
(이상 무순.)
아, 더 나아가도 되는지?
이룸 없어 이름 없음.
그래도 아름다움.
짧은 꿈, 긴 숨.
(주: 친구 예술가에게 칭찬받은 글...이라고 필자가 생각했던 것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