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미한 옛사랑의 그림자

* 동창회 홈페이지에 실렸던 글이다.  졸업후 40년이 되었다고, 시간이 허락되는 이들은 제주도로 가족 여행을 함께 떠난다고 하는데...  마음으로는 같이 가고파서 이런 글을 쓰게 되었는지.

 

 

우리는 4월 혁명 때에 중학생이었다.  그러니, 듣기에도 폼나는 4.19 세대는 아니고, 발꿈치 들어 1년 정도 마이가리--부적절한 줄 알지만, 딱 필이 꽂히는 말이어서--하면 6.3세대라 할 수 있을까.  우리는 그렇게 ‘낀 세대’이었다.  자유당 시절에 대학생이었던 이들은 ‘자유부인’적 분위기의 사교춤을 배웠고, 우리 뒤를 따라 오던 이들은 디스코 같은 빠른 박자의 ‘흔들기’를 즐길 줄 알았는데, 우리는 일부 ‘불량(?)학생’들이 트위스트를 추는 정도에 그치는, 말하자면 ‘춤 문화’에 노출되지 않은 건전한 세대이었다. (‘쪼다’라는 얘기.)  우리가 못 배운 것 또 있지.  한문, 일어.  아무튼, 그저 그랬다.  (공부는 잘 했지.  동기에 학자가 몇이냐.)

 

교복 입고 다방 출입할 순 없지만, 어른에 묻혀서 들어갔다.  무교동에 ‘교차로’라고 있었지.  그 날 귀로 스며든 멜로디가 ‘희미한 옛사랑의 그림자’이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건 당시 대학생들에게 짜~하니 알려진 노래이었다.  (뭐, 따라 부르기에는 어렵지만.)  나도 등교 혹은 귀가 길에 라디오 방에서 소음 공해로 유출되는 그 노래가 나올 때에는 걸음을 멈추고 듣기도 했다.  원제는 ‘Luna Llena’이니까 ‘보름달’쯤으로 옮겨야 되겠는데, Who cares?  복사판 나쁜 음질이라도 오로지 Trio los Panchos의 연주로 들어야지, 블루벨즈, 정씨스터즈가 우리말로 부른 것은 기분을 내지 못했다.  (아마 요즘 쉽게 들을 수 있는 것은 왕년의 삼인조 실력 못지 않은 Los Tres Diamantes의 연주이리라.)  그것은 왜색 뽕짝을 흡수하기에는 자존심이 손상되는 청년 문화층이 비틀즈를 만나기 전에 틈새시장을 파고든 히트 작이었다.

 

4.19세대이었을 시인 김광규는 ‘희미한 옛사랑의 그림자’라는 시 한편으로 완전히 ‘4월의 시인’으로 두각을 드러내게 되었다.  마치 T. S. Eliot의 “사월은 잔인한 달...” 만큼이나 잘 팔리는 게 신동엽의 “껍데기는 가라”와 김광규의 “4.19가 나던 해 세밑”으로 시작하는 ‘희미한 옛사랑의 그림자’이다.  망가졌지만 부끄러움을 아는 이들의 자기비하를 그는 이렇게 표현했다.

 

그로부터 18년 오랜만에
우리는 모두 무엇인가 되어
혁명이 두려운 기성 세대가 되어
넥타이를 매고 다시 모였다.
회비를 만 원씩 걷고
처자식들의 안부를 나누고
월급이 얼마인가 서로 물었다.
치솟는 물가를 걱정하고
즐겁게 세상을 개탄하고
익숙하게 목소리를 낮추어
떠도는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모두가 살기 위해 살고 있었다.
아무도 이젠 노래를 부르지 않았다
(.....)
우리는 짐짓 중년기의 건강을 이야기했고
또 한 발짝 깊숙이 늪으로 발을 옮겼다.
(.....)

 

그러니까, “자유가 아니면 죽음을 달라”--어쭈, 정말?--라고 달려갔고, 때묻지 않은 고민을 하고, 아무도 귀 기울이지 않는 노래를 목청껏 부를 수 있던 청년들은, 훗날 물가 걱정이나 하며 부정부패에 직간접으로 연결된 그저 그런 중년이 되었더라는 얘기이다.

 

다른 시대로 접어들어, ‘서른, 잔치는 끝났다’라며 발칙한 몸짓을 해댄 최영미가 ‘또 다시 희미한 옛사랑의 그림자’라는 시를 토했다.  이문열은 소설 ‘아가’의 부제로 그 구절을 첨언하기도 했고, 같은 제목의 연극도 나오고 그랬다.

 

왜 그 신파조의 세 마디가 우리 가슴을 저미는가?  희미한, 옛사랑, 그림자...  어떻게 그런 조합이 이루어졌을까?

 

희미한?  젖빛 유리나 창호지를 사이에 두고 어른거리는 것, 뿌연 것, 다가가지 못하는 것, 그러나 분명히 거기 있는 것, 그래서 궁금한 것, 그리운 것.  우리 백성이 좀 그렇잖아?  매사에 명확하지 않아, 흐릿해서 트릿한, ‘fuzzy’하고, 그렇다고 따질 수도 없고.  길을 물으면 시원하게 가르쳐주지 않고, “이리로 쭉 한 마장쯤 가다가 지붕에 검은 고양이 앉아 있는 집을 보거든, 담을 끼고 쬐꼼만 더 가슈.”  그것도 손짓이라도 하면 모르겠는데, 턱을 들어 가리킨다.  그런데 말이야, 세상에 뭐 그렇게 명확한 게 있겠냐?  그래서 “사랑씩이나?”라는 애매한 의문을 품은 채 화도 내지 못하고 그냥 사는 거라고.

 

옛사랑?  에이, 그런 말에 뭘 더 보태겠냐만, 영어로는 ‘old flame’이라고 한다며?  우리가 언제 사위도록 뜨겁게 타오른 적 있냐?  그런데, 바로 그게 문젠가 봐.  불꽃 한번 제대로 피우지 못했던 것이 불씨로는 남아 있기에.  하여, 꺼진 불도 다시 보자!

 

그림자?  그 자체로는 실체가 아니지만, 뭐가 있다는 얘기 아니겠어?  영(影).  남도 사투리로 ‘그리매’라고도 하지.  과거의 진한 그림자가 길게 드리워져 있으면 무척 언짢을 거라.  그래서 슈베르트의 ‘백조의 노래’ 13곡(그의 가곡 중 끝에서 두 번 째)  ‘그림자(Der Doppelganger)' 는 그렇게 으스스하던가.

 

이렇게 길게 나갈 얘기도 아니었다.  졸업 후 40년. (‘사십’이라는 것이 성경에서는 ‘고난의 수’라고도 하더라마는.)  그리고, 턱걸이하면 환갑.  그런 시점에서 “한번들 만나자”라는 사발통문이 발했는데...  난 말야, 괜히 좀 꿀리는 데가 있고 그래.  후회, 자책, 동경, 뭐 그런 앙금들이 뽀얗게 떠오르길래 ‘희미한 옛사랑의 그림자’라는 알약 하나 풀어 넣어본 것이다.  기왕 걸었던 길이지만, 이제 와서 바꿀 수도 없는 것이지만, 후회해도 소용없지만, 그래도 “갈라졌던 데가 어디였지?”로 돌아보면서, ‘가지 않은 길’(Robert Frost...)을 생각해보는 거지.

그렇지만, I did it my way!

 

(그리고, 아주 소량의 믿음이라도 지닌 사람이라면, ‘In His Way’와 ‘In His Time’도 생각해보게 되고.)